목수 된 류호정 "'고생 모르는 철딱서니' 선입견 깨고 싶었다"
"결과물이 손에 잡히는 일이라 매력"
"불법계엄 후 정치 양극화 안타까워"
"개혁신당 내홍은 구태… 국민 실망"
정치 복귀 가능성은 "없다" 선 그어

정치인 류호정에게 옷차림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제21대 국회의원으로 재임 당시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 화려한 분홍색 도트 무늬 원피스를 입고 와 화제를 모았다. 최연소 의원으로서, 엄숙하고 권위적인 국회 분위기에 대한 도발적 문제 제기였다. 정의당 채용 비리 신고센터 '킬비리'를 운영하면서 영화 '킬빌'의 주인공처럼 샛노란 운동복을 입는가 하면, 타투(문신) 합법화를 주장할 땐 등이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타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 현장 노동자의 옷을 입고 있다.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의 한 가구 공방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류호정 전 개혁신당 의원은 연청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이달 초부터 류 전 의원은 맞춤형 가구 제작 및 인테리어 업체인 홈랩스의 정규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류 전 의원이 건넨 명함에는 '목수'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도 류 전 의원은 작업장에서 원목 테이블을 만들고 있었다. "윙" 소리를 내며 무섭게 돌아가는 절단기에 목재를 넣고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모습이 능숙해 보였다.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자재를 다루느냐고 묻자 "장갑을 끼면 칼날에 얽혀 손이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현장 노동자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는 법안을 살피던 손으로 망치질하고 끌(목공용 도구)을 다룬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류 전 의원은 게임 회사에 취업한 뒤 민주노총에 몸담았던 노동 운동가 출신이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여의도를 떠난 전직 국회의원이 기술직으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하 류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_목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지난해 총선 때 개혁신당 후보 등록을 포기한 뒤 '날백수'가 됐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떤 직업을 할지 고민하다 피와 땀을 흘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임 회사에 다닐 때 했던 업무나 정치권 활동은 무형의 것들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결과물이 손에 잡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나를 따라다녔던 '고생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국회의원'이라는 선입견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진짜 고생을 해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_낯선 일인데 전직 과정은 순탄했나.
"정부의 직업 훈련비 지원 프로그램 '국민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목공 학원에 등록해 기초 소양을 배웠다. 목재나 공구 다루는 법에 대한 기본 지식을 공부했다. 어릴 때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적응엔 문제없었다. 학원에 다니면서 지금 회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취업하고 싶다'고 했더니 '정말 진지하게 목수가 되려는 게 맞느냐'고 세 번이나 묻더라. 전직 의원이 육체 노동을 하겠다니 반신반의했던 거다. 동료들과도 허물없이 잘 지내고 있다."
_기술직이 감소하는 사무직의 대안이 될까.
"요즘 청년 세대 사이에선 사무직을 우선시하는 편견이 줄어든 것 같다. 다만 기술직에서도 업무 스트레스나 사회생활의 고충은 존재한다. 다른 직군의 장점이 좋아 보여서 전직했다간 고민의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직업이든 끝없이 스스로를 탐구하고 자기계발 해야 하는 과제는 피할 수 없다."

_전직하는 동안 12·3 불법계엄이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초현실적인 선택에 대해 일단 놀랐다. 동시에 국회가 즉시 불법계엄을 무효화하고 시민들이 민주적인 집회를 통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계엄이 부적절한 것과 별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국민 반감도 상당하며, 정치가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는 의미여서 실망스럽다."
_'제3지대' 정치 세력화가 실패한 결과일까.
"우리나라는 어엿한 제3지대 세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도 국민은 제3지대를 고려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층은 각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상대방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뭉쳐있다. 그럼에도 제3지대 세력은 필요하다. 다원주의에 기반해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문화는 정치의 본령이다. 정의당에 있던 시절 결성한 제3지대 정치 모임 '세 번째 권력' 회원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참여 중이다."
_'제3지대' 정당을 표방한 개혁신당은 내홍을 겪고 있다.
"원래 작은 집에서 싸움이 잦다고 하지 않나. 현재 갖고 있는 권력이 작다 보니 여러 사람에게 나누기 힘든 탓이다. 개혁신당 내홍은 언뜻 보기에 지도부 사이의 감정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결국 개혁신당도 기존의 거대 정당들과 똑같다'며 조소할 것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준석 의원은 당 내홍을 빨리 수습하지 않는다면 선거 때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내홍 사태와 별개로 회사에 취업하면서 지난달 설 연휴 직전 개혁신당을 탈당한 상태다."

_페미니즘 운동은 더 이상 안 하나.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다른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페미니즘이 특정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에 머물지 않고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나타날 수 있다. 현실 정치권처럼 서로가 날 선 태도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은 앞으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될 텐데, 다른 의견을 갖는 사람도 포용해야 더 큰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_정치권으로 복귀 가능성은 없을까.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로 '왜 아무 활동도 안 하느냐'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런 애정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지금까지 제대로 답장하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현재로선 정치인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정치라는 게 꼭 당직이나 공직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민으로서 좋은 정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생각이다. 앞으로 SNS를 통해 지지해주셨던 분들과 열심히 소통하겠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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