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충격 던진 밴스 미국 부통령 연설…“극우 정당 배제 말라”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향해 ‘극우 정당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관행을 중단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그는 유럽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러시아·중국이 아니라 이민 정책 실패·표현의 자유 억압 등 유럽 내부에서 비롯한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외교가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유럽간에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련된 근본적인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밴스 부통령은 14일(현지시각)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연설에서 “현재 유럽의 가치가 미국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유럽 정치가 검열과 선거 취소, 정치적 올바름에 물들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유럽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유럽 스스로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서 후퇴하는 것”이라며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부의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밴스 부통령은 당초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유럽 간 안보 현안을 연설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 정치권이 대중의 ‘진정한 우려’를 외면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데 집중했다.
밴스 부통령은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는 국민의 우려를 무시하거나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을 때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정치권이 극우 정당을 배제하는 것을 두고 “유권자의 목소리를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독일 정치권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의 협력을 차단하는 방침을 강하게 비판하며 “유권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어떤 것도 보호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시대적 기득권층이 ‘허위 정보’나 ‘잘못된 정보’ 같은 소련 시대의 낡은 용어를 내세워 검열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영국과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며, 루마니아 대선 취소, 스웨덴의 쿠란(이슬람 경전) 소각 시위자 체포, 영국에서 낙태 클리닉 근처에서 기도하던 남성 체포 사건 등을 거론했다.
그는 이민 문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지목하며,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비극을 겪어야 이 문제를 바로잡을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최근 독일 뮌헨에서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의 차량 돌진 테러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연설 직후 밴스 부통령은 독일을 위한 대안의 총리 후보인 알리스 바이델과 30분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으며,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와의 만남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미국 정부의 외교 관례를 깬 조치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극우 정치 세력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밴스 부통령의 발언 이후 유럽연합(EU) 외교정책 책임자인 카야 칼라스는 즉각 유럽연합 외교장관 회의를 소집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 싸우고 싶지 않지만, 동맹국 간 균열이 커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도 “밴스 부통령이 유럽 일부 지역을 권위주의 정권과 비교한 것이라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내가 살아가는 유럽과 민주주의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밴스 부통령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내 극우 세력을 지지하는 일련의 움직임 중 하나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도 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당 대표인 알리스 바이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머스크는 “독일은 과거의 죄책감에 너무 집중하고 있다”며 이 당의 부활을 독려하기도 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난민과 이민자 반대 정책을 내세우며 최근 독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정당은 나치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한 전력이 있으며, 일부 당원들은 연방정부 전복을 모의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정보당국과 정치권은 이러한 발언이 러시아의 선전전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번 연설은 미국과 유럽 간의 가치관 차이가 단순한 외교 정책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련된 근본적인 균열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인 미국-유럽 동맹 관계를 재편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를 놓고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베를린/김원철 장예지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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