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신도 350명의 목숨 앗아간 사이비 종교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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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2월 16일, 사이비 종교 백백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백백교는 350여 명의 신도를 살해한 희대의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그들의 범죄는 단순한 살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백백교의 범죄는 1937년, 한 신도의 탈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백백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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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7년 2월 16일, 사이비 종교 백백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백백교는 350여 명의 신도를 살해한 희대의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그들의 범죄는 단순한 살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백백교는 원래 백도교라는 이름으로, 1919년경 전용해가 교주가 되면서 백백교로 개칭했다. 전용해는 '한 사람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하자'라는 교리를 내세웠다.
전용해는 신도들에게 하늘과 땅에 예배하면 무병장수, 불로불사하며 신선이 된다고 속였다. 또한, 자신은 불로장수하는 지상 신선이라고 주장하며 신도들을 현혹했다.
백백교는 신도들에게 재산을 바치게 하고, 부녀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다. 말을 듣지 않는 신도들은 감금하고 고문했다. 심지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1937년까지 80여 차례에 걸쳐 350여 명의 신도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백교의 범죄는 1937년, 한 신도의 탈출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백백교의 범죄 행각에 경악했고,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백백교 교주 전용해는 1937년 2월 21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신원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진위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
백백교 사건은 일제강점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백백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백백교 사건은 사이비 종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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