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내년 올림픽 앞두고 ‘청신호’…최대 복병은 린샤오쥔
동갑내기 친구 박지원-린샤오쥔 몸싸움, 올림픽에서도 재연될 가능성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한국을 상대로 금메달을 따는 것은 호랑이 이빨 뽑기 같다." 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장징 총감독의 말이다. 그만큼 한국 쇼트트랙이 강하다는 뜻이다. 2025 동계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중국 하얼빈은 시베리아 호랑이로 유명한데, 이를 빗댄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 쇼트트랙은 호랑이 기운을 뽐내며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따냈다.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금메달 6개는 역대 최고 타이 기록(1999년 강원, 2003년 아오모리 대회 때도 금메달 6개)이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청신호를 켰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회 쇼트트랙에 걸린 금메달은 모두 9개였다.

적지에서 호랑이 이빨 제대로 드러낸 한국 쇼트트랙
한국 쇼트트랙은 이번 아시안게임 전에 일부 우려가 있었다. 작년 10월 국가대표 감독 선발 과정에서 1순위 후보의 과거 승부 조작 범죄 이력이 드러나 재채용 과정을 거쳤다. 또한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중국이었기에 '홈 어드밴티지'를 앞세운 중국의 텃세가 예상됐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때도 한국 쇼트트랙은 중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으로 힘든 경기를 펼쳤다. 베이징 대회 때 한국과 중국은 각각 2개의 금메달을 땄다.
여자 종목은 '절대 강자' 최민정(27)이 1년 만에 복귀하고 차세대 스타 김길리(21)가 건재했으나, 남자 종목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남자 계주에 출전한 박장혁을 제외하고 베이징동계올림픽 때와 비교해 개인 종목 출전 선수가 전부 바뀌었기 때문이다. 팀 에이스 박지원(29)의 종합국제대회 출전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나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때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었다. 경험적인 면에서 물음표(?)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첫날 열린 혼성 계주 2000m에서 금메달을 딴 게 컸다. 혼성 계주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있는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열렸다. 혼성 대표팀은 박지원·장성우·김태성·김건우(이상 남자선수), 최민정·김길리·심석희·노도희(이상 여자선수)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예선부터 결선까지 남녀 각각 2명씩 4명이 짝을 바꿔가면서 레이스를 했다. 박지원·김태성·최민정·김길리가 나선 결승전에서 한국은 중국과 치열한 자리 다툼을 벌였고 중국의 마지막 주자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결승선을 두 바퀴 남기고 넘어지면서 1위를 차지했다. 시상대에서 혼성 대표팀 8명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운 한국 쇼트트랙은 승승장구했다. 이어 열린 개인 종목에서 거듭 금메달을 땄다. 여자 500m(최민정), 남녀 1000m(장성우·최민정), 남녀 1500m(박지원·김길리)를 휩쓸었다. 남자 500m에서만 린샤오쥔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이 종목 또한 결승전 도중 중국 대표팀 동료 쑨룽이 뒤에서 손으로 린샤오쥔의 엉덩이를 밀어준 정황이 포착됐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규정에 따르면, 쇼트트랙 선수들은 경기 중 동료들로부터 '밀어주기'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이 경우에는 페널티 등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심판진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린샤오쥔은 혼성 계주 때 넘어진 미안함 때문인지 금메달 확정 뒤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다. 린샤오쥔이 중국 귀화 후 종합국제대회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오열하는 린샤오쥔에게 다가간 박지원과 장성우가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년 올림픽에서 황대헌-린샤오쥔 숙명의 맞대결 이뤄질 수도
한국은 개인전에서 금메달 5개를 땄으나 가장 금메달이 유력했던 계주 종목에서는 남녀 모두 고개를 떨궜다. 남자는 2위로 들어왔으나 페널티 판정을 받았고, 여자는 마지막 주자인 김길리가 반 바퀴를 남겨두고 넘어졌다. 남자 5000m 계주의 경우, 한국 마지막 주자인 박지원이 동갑내기 친구인 린샤오쥔과 서로 손으로 막는 동작을 취했는데 박지원에게만 페널티가 주어졌다. 조금은 아쉬운 판정이었으나 한국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남녀 계주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메달 혹은 은메달을 꾸준히 땄던 쇼트트랙 계주팀이었다.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성과는 분명하다. 세대 교체 중인 대표팀이 2026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아시안게임 첫 출전의 박지원과 김길리, 그리고 장성우는 대회 2관왕에 올랐다. 김길리는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는 등 떡잎부터 남달랐던 선수로 막판 추월 능력이 뛰어나 '람보르길리'로 불린다.
'월드 클래스' 최민정의 건재도 확인했다. 최민정은 2022~23 시즌 후 1년간의 휴식을 가졌고, 2024~25 시즌을 앞두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500m 종목에서 1위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기록을 4차례 경신하기도 했다. 500m·1000m·혼성 계주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쇼트트랙 선수로는 23년 만에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여자 3000m 계주에서 예상대로 우승했다면 최민정은 쇼트트랙 최초로 4관왕도 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곱씹었다. 최민정은 내년 동계올림픽 때 3연속 금메달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2018년 평창 대회 때 1500m와 계주 금메달, 2022년 베이징 대회 때 1500m 금메달을 각각 땄다.
아시아 무대에서 예열은 끝났다. 이제 쇼트트랙 대표팀은 1년 후 이탈리아에서 펼쳐지는 세계 무대를 겨냥한다. 국가대표 평가전을 다시 치르기 때문에 대표팀 면면이 달라질 수는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빠졌으나 베이징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도 평가전을 대비해 강도 높은 훈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때 우리 대표팀 최대의 적 역시 중국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안방에서 열린 대회인데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다소 저조한 성적(남자 500m·여자 계주 금메달 2개)을 거뒀다. 내년 올림픽에서도 한국을 위협할 중국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는 역시 린샤오쥔이다. 린샤오쥔은 2019년 대한민국 국가대표 '임효준'이던 시절, 선수촌에서 암벽등반 훈련 도중 장난을 치다가 동료 황대헌의 바지를 벗기는 행위로 신체 일부를 노출시켰고, 이 사건의 파장은 커졌다.
황대헌이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며 임효준을 신고했고,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임효준에게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2심에서 성추행 의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임효준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임효준은 이 사건으로 인해 결국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귀화해 국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하얼빈 대회는 린샤오쥔이 중국인으로 처음 참가한 종합국제대회였다. 만약 황대헌이 국가대표로 다시 뽑힌다면 악연으로 얽힌 린샤오쥔과 내년 이탈리아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 다시 2019년 사건이 재조명될 수도 있다. 동계올림픽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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