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불균형, 2025년 중국의 두 얼굴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5. 2.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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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로 IT 초강국 거듭나…그 이면엔 과잉 생산 등 문제점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중국의 AI 기술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내놓은 생성형 R1 모델은 오픈AI의 챗GPT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이면서도 발표된 개발 비용은 적다.

의심스럽기는 하다. 다른 AI 모델의 답변을 학습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지식재산권을 무단 침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증류(Distillation)에 대한 의심이다.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 비슷한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알려진 것만큼 적은 비용만 들어갔을 리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발표된 개발비에는 알고리즘 설계 비용을 포함해 많은 부분이 빠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혁신적인 '가성비'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마침 올해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이 마무리되는 해다. 10년 전 선포된 이 계획은 2025년까지 중국을 '첨단 제조 강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저부가가치 제조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였던 중국은 기술 자립도 제고와 산업구조 고도화가 필요했다. 중국이 선정한 10대 핵심 분야는 차세대 정보기술(IT), 고급 수치제어 공작기계와 로봇, 항공우주 장비, 해양공학 장비 및 첨단기술 선박, 첨단 철도교통 장비, 신에너지 차량, 전력 장비, 농업기계 장비, 신소재, 생물 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였다.

1월21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 회의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EPA 연합

딥시크로 전 세계 뒤집어…美 견제 속 질주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견제가 중국의 발목을 잡았다. 두 차례의 관세 제재가 있었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의 집요한 봉쇄와 견제를 받으며 중국은 아예 구호를 거둬들였고 2019년부터는 대외적인 언급도 피했다. 하지만 계획을 중단하거나 철회하지는 않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를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이를테면 '고품질 발전'이라는 말로 바꿨다.

공식 언급에선 사라진 '중국제조 2025' 계획은 어디까지 실현됐을까. 딥시크의 R1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목표가 달성됐다. 계획에 담긴 260개 이상의 정량적 지표는 86% 이상이 이미 이뤄졌다고 한다. 굳이 지표를 살펴보지 않아도 지금의 중국은 10년 전의 중국과 다르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GDP는 11조 달러에서 18조 달러로 늘어났고 중국의 첨단 제조업은 많은 부문에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BYD는 20.5%의 점유율로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에너지·발전, 조선업과 고속철도 등 4대 산업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태양광발전 등 신에너지 설비 규모도 세계 1위다. 항공우주와 생명공학, 첨단소재, 로봇·공작기계와 반도체 등 미래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5대 산업에서도 중국은 최소한 목표 달성에 가까워졌다. 세계 DRAM(동적 메모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10년 전에는 사실상 제로였지만 지금은 10%를 넘는다.

중국이 이룩한 혁신의 성과를 미국의 규제로 촉발된 이른바 '강요된 기술 자주화'의 결과로 보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의 압박이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혁신을 촉진했다는 식의 해석은 중국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낮은 평가에서 비롯된다. 사실 미국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중국의 과학 굴기는 훨씬 더 일찍 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양적인 차원에서는 이미 2016년부터 미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를 중국적 방식으로 극복해 왔다. 가지고 있는 경제, 사회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는 총력전을 통해서다. 막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과 대규모 인력 충원, 그리고 파격적인 보상 체계가 합쳐졌다. 지난 10년간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쏟아부은 돈만 우리 돈으로 170조원에 이른다.

배출되는 인력의 규모는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된다. 연간 대학 졸업자의 절반인 500만 명 이상이 과학기술과 공학, 수학 분야 전공자다. 중국은 40여 개 핵심 대학을 골라 대규모 재정 지원을 했고 고급 인력 1만 명을 뽑아 세계적인 인재로 키우겠다는 '만인계획'도 추진했다. 제도적인 지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렵다.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법을 만든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기업의 혁신 사례는 이제 AI는 물론이고 양자역학과 통신장비,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의 영역에서 수시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중국의 산업 고도화는 한 사회가 가진 자원을 특정한 목표의 실현을 위해 집중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낸 성과다. 자원의 총동원과 집중이라는 전략으로 중국은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이루고 IT 초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REUTERS

취업난·지방정부 부채도 골칫거리

그러나 이런 전략은 성취만큼이나 부작용 또한 필연적이다.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항상 엇갈린 뉴스가 전해진다. 한편에서는 딥시크 같은 놀라운 성과가 눈부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막대한 부채 위에 누적된 거시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엇갈리는 중국 경제의 두 모습은 모두 그동안 중국 정부가 시행해온 정책의 결과다. 정부 주도의 집중적인 총력 지원 체제는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혁신과 함께 일부 산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투자로 '중국식 과잉 생산' 문제를 낳는다. 실패한 투자로 인해 쌓인 부실도 많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늘렸다가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안게 됐고,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는 부실 규모는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일부에서는 20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업도 문제다. 해마다 천만 명이 넘는 대학 졸업자가 쏟아지지만, 내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인력 채용을 늘리지 못한다. 늘어나는 청년실업에 당황한 중국은 대학과 대학원 재학생은 실업률 통계에서 모조리 제외한 청년실업률만을 발표하고 있다.

공급 중심 성장, 첨단 제조업 중심의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과 첨단기술 수준을 겨루는 중국이지만 아직도 14억 인구 중 6억 명이 월수입 1000위안(약 19만8000원) 미만으로 산다. 지난해에도 중국은 5%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렸고 예산 지출계획을 재조정했다. 빚더미 위에 오른 지방정부를 위한 대규모 채권 프로그램도 도입해야 했다.

올해는 사정이 더 어렵다.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금융 정책을 펼칠 예정이다. 이미 작년 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2011년 이래로 유지한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 기조를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빚을 더 늘려서라도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말이다. 현재 3% 수준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4%까지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 경제에는 재정정책만이 아니라 구조 개혁도 필요하다. 인구 문제부터 낮은 생산성까지 중국이 직면한 문제가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2025년의 중국 경제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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