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정적 깨트린 ‘지진 경보음’, 앞으로도 피하기 어렵다 [김형자의 세상은 지금]
규모 7.0 이상 강한 지진 발생 가능성은 비교적 낮아
(시사저널=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약한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2월7일 새벽 2시35분경 충북 충주시 북서쪽 22km 지역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12일 전북 부안군에선 규모 4.8 지진이 발생했다. 2023년 11월30일엔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같은 해 5월 한 달 동안에는 강원도 동해 주변에서 무려 61번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횟수가 점점 증가하자 국민 사이에서는 '혹시 한반도에서도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공포심까지 일고 있다.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한반도에 왜 이렇게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걸까.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진 활동과 기후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반도에서 가장 지진이 잦은 경북 동해안 지역의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긴급재난문자에 '화들짝'…시스템 개선 필요
보통 지진은 주로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지각이 만나거나 맞물리는 판 경계부(지구 바깥층)에서 일어난다. 마치 손바닥을 비빌 때처럼 단층의 왼쪽과 오른쪽이 엇갈려 옆으로 밀리면서 발생한다. 단층은 지층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버티지 못하고 서로 어긋난 지질구조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지각판의 경계에 있지 않고 판 안쪽에 있다. 이 때문에 일본 단층처럼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기는 어렵지만, 판 경계에서 발생하는 응력이 판 내부로 전달돼 약한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반도가 위치한 유라시아판이 인도판과 태평양판 사이에 끼여 있는 탓에 지층에 계속 압력이 쌓인다.
2월7일 충주시 지진 또한 판 내부에서 발생했다. 이 지진의 실제 규모는 3.1이었지만, 기상청이 발생 직후 지진 규모를 4.2로 추정해 충청권은 물론 서울과 인천 등 12개 광역 시도에 긴급재난문자를 새벽에 발송했다. 지진 규모가 '3.5 이상 5.0 미만'인 육상 지진이 발생할 경우, 최대 예상진도가 '5 이상'이면 예상진도 '2 이상'인 시·군·구에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다. 최대 예상진도가 '5 미만'일 땐 예상진도 '2 이상'인 시·군·구에 안전안내문자가 보내진다.
진도는 흔들림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진 에너지양을 나타내는 '규모'와 달리 진앙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해 10월, 기상청은 불필요한 지역에서 경고음이 울리지 않도록 이 같은 기준을 마련했다. 충주 지진의 긴급재난문자는 기상청의 재난문자 기준이 개편된 후 처음 발송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확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날 SNS에는 받지 않아도 될 40데시벨의 경고음에 '화들짝' 놀라 밤잠을 설쳤다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의 글이 쏟아졌다.
4.2에서 3.1로 줄어든 '지진 규모 1.1'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무려 44배나 차이 난다. 이렇듯 규모 1 이상의 오차가 난 건 이례적이어서 파장이 일었다. 기상청이 분석한 실제 지진 규모와 자동 분석 정보 중 가장 오차가 큰 지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오차가 생긴 원인은 기상청의 지진 분석 시스템의 한계에 있다.
지진파는 크게 P파와 S파로 나뉜다. 지진이 발생하면 진앙지로부터 10~20km 떨어진 4개 이내 관측소 분석 시스템에서 먼저 도달하는 P파를 자동 분석, 규모를 추정해 속보를 발송한다. 이후 S파가 도달하면 기상청의 분석사가 P파와 종합해 수동으로 데이터를 상세 분석해 지진 규모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에, 초기 분석값과 추후 분석값의 오차는 항상 존재한다.
자동 분석 시스템은 지진 발생을 신속하게 알리는 게 목적이다. 따라서 가장 빨리 관측된 관측소의 P파를 이용해 추정된 규모를 기준으로 재난문자를 발송하는데, 충주 지진의 경우 해당 관측소가 진앙과 7km로 가까워 P파와 S파가 겹쳐 관측돼 과잉 추정되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물론 빠른 재난 소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불필요한 혼란을 막으려면 조기 경보 시스템의 오차율을 감안해 정확한 정보의 재난문자를 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반도에는 지진단층대가 크게 3개 있다. '양산단층대'와 '옥천단층대', '추가령단층대'가 그것이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양산단층대다. 양산단층은 경주∼양산∼부산을 잇는 200km 길이의 단층대로 경상 분지에서 가장 큰 단층이자 활성단층이기 때문이다.
경주~부산 잇는 양산단층대에서 잦을 가능성
현재 포항과 경주를 잇는 영남권에서만 최소 14개 활성단층이 확인되고 있다. 경주·포항 부근에서 지진이 잦은 가장 큰 이유다. 양산단층대는 1978년 지진 관측 시작 이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한반도에서 규모가 큰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단층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양산단층대가 어떻게 현재 모습으로 진화해 왔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층이 받는 응력의 변화가 어떻게 단층을 활성화시키고, 이에 따라 단층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알면 지진의 활동성을 예측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2월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활성지구조연구센터 이태호 박사 연구팀은 정밀 연대측정 기법을 이용해 양산단층 인보구간(울산 울주군 인보리 지역 아래 단층)에서 채취한 퇴적층 시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진 활동과 빙하기(기후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지역의 하천 흐름과 퇴적 환경 등 지형 변화가 크게 일어났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보구간에서는 적어도 두 차례 이상 큰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 지진은 7만 년에서 5만 년 전 사이, 그다음 일어난 마지막 지진 활동은 2만9000년 전후로 추정된다. 또 7만 년 전을 기점으로 퇴적물의 공급원과 퇴적 속도가 급격히 변화했고, 퇴적물이 흘러나오는 방향도 서쪽 산지에서 동쪽 산지로 옮겨갔다.
이러한 변화는 양산단층의 지진 활동과 함께 약 7만 년 전에 시작된 빙하기로 인해 강수량이 감소해 하천의 침식 능력이 약화되면서, 퇴적물의 공급원과 퇴적 속도에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반도의 지형이 단순히 지진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후 변화와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를 통해 양산단층에서의 지진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군집을 이뤄 발생하는 경향이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한반도처럼 판 내부 단층에서 발생하는, 주기적이지 않고 빈번하지 않은 지진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지진이 계속 일어날까. 일단 활성단층이 확인된 이상 피하긴 어렵다. 다만 규모 7.0 이상의 강한 지진 발생에 대해서는 아직 확답을 할 수 없다. 대신 연구팀의 이번 연구가 지진 위험도와 지진 발생 예측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지진을 예방할 희망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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