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씨, 멜로를 왜 이제야 한 겁니까

배우 이준혁은 2007년 단막극으로 데뷔한 뒤, 드라마 ‘적도의 남자’(2012)의 출세욕 강한 이장일과 ‘비밀의 숲’(2017)의 속물 검사 서동재를 거쳐, 영화 ‘범죄도시3’(2023)의 메인 빌런 주성철까지 여러 얼굴을 보여줬다. 쉼 없이 이어졌던 작품 활동 중 유일하게 찾아보기 힘든 게 본격 로맨스 장르였다. 비열하거나 잔인한, 주로 강렬한 역할을 소화한 탓이다. 그런 그가 데뷔 18년 만에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연기하며 “왜 이제야 로맨스를 했냐”는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4일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를 통해서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준혁과 만나 ‘나의 완벽한 비서’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왜 이제야 로맨스를 했냐는 시청자들의 애정 어린 원성에 그는 “옛날에 그렇게 말해주시지 그랬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그가 연기한 유은호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공을 돌렸다. “인기는 시대가 같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지금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게 이것인 거죠. 다른 시대에 나왔으면 외면받을 수도 있고요.”

‘나의 완벽한 비서’ 속 유은호는 헤드헌팅 회사를 운영하는 강지윤(한지민)의 비서다. 여자 대표와 남자 비서라는 설정을 통해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비틀었다. 은호는 일만 잘할 뿐 일상생활에서는 허점투성이인 지윤을 ‘밀착 케어’하고 끼니를 수시로 거르는 그녀에게 따뜻한 집밥을 해준다.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은호의 조각 같은 외모도 무시할 수 없지만, 스스로를 몰아붙이듯 살아가는 지윤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은호의 모습이 지금 시대가 바라는 남성상을 판타지처럼 구현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준혁도 은호가 청사진과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방 청소에 비유하자면,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은 무엇을 청소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럼 저는 (방이 어때야 하는지) 청사진도 필요하다고 봐요. 은호는 그런 정답 같은 것을 보여주거든요. 문고리를 고치고 밥을 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죠.”

이런 인물의 성격 때문에 주인공이지만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가 많았다. 이준혁은 주인공이면서도 주도적이어선 안 되는 은호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은호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조연처럼 다른 인물들을 밀어주는 캐릭터거든요. 음악으로 치면 메인 보컬이 아니라 베이스기타처럼 은은하게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움직임을 통해 유머를 곁들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는 싱글 대디인 은호의 딸 별이를 연기한 기소유에 대해 “완벽한 배우”라고 칭찬했다. “아이가 50명 넘게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현장을 소유가 딱 (정리를) 하더라고요. 아이라서 귀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대화의 전반에서 배우로서의 공력이 느껴졌고요. 동료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있는 친구입니다.” 로맨스로 호흡을 맞춘 한지민에 대해서는 “무협지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내공이 있는 사람 같은 분이라 든든했다”며 “존경심이 드는 고마운 동료를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로맨스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아직 ‘로맨스 장인’이라는 수식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범죄도시’에서는 액션 합을 맞췄다면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키스신의 합을 맞추더라고요. 로맨스의 문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장르가 다를 뿐 시청자를 설득하는 과정은 비슷하다는 것도 알았고요. 하지만 여전히 어떤 부분은 어렵죠. 이거 하나 했다고 ‘내가 로맨스 장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저 자신이 너무 싫을 것 같아요.”
한편, 이준혁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게임과 그림책을 발표해 화제가 됐고, 노래 만드는 취미까지 가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나무늘보를 주인공으로 한 ‘아기보’라는 동요를 만들어서 국제 나무늘보의 날에 맞춰 발매했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 함께 출연한 배우 서혜원이 노래를 불렀다. “작사랑 기획, 제작을 제가 했습니다. 아직 수입은 없어요. 다음 곡도 만들고 있는데 성인이 들을 수 있는 곡이거든요. 음악적 조예가 깊진 않지만 ‘취미가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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