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순 발견한 윤리적 로봇의 선택[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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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해울 작가를 아주 좋아한다.
박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언제나 이 거칠고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공감과 이 생명들을 쥐어짜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성실하고 촘촘한 구성 속에 함께 녹아 있다.
서영하와 동료들은 로봇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인간형 로봇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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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적’은 3부로 구성된 장대하고 광활한 이야기다. 1부에서 주인공 서영하는 ‘차페크 행성’이라는 외계 행성에서 작품 속 가상의 연료 광물인 ‘아이포튬’을 채굴하는 광산의 관리자로 일하게 된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서영하는 인간형 로봇인 ‘EL’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좋아했고 자신이 개발하는 로봇을 ‘사랑했다’. 서영하와 동료들은 로봇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인간형 로봇을 만들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본국어에 다른 억양을 섞어 말하는 사람, 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명백한 권력 차이와 서열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관계가 얽힌 광산에서 화재 사건이 발생하고, 서영하의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지제’라는 인물이 사망한다. 그리하여 서영하는 이 화재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한편 서영하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인 EL-C9은 윤리 시스템을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데, 문제의 C9 로봇이 차페크 행성 광산 업무에 차출된다. 그러면서 2부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점이 이동하여 의료용 로봇이었던 C9이 요양병원에서 경험한 상황들이 밝혀진다. 요양병원에는 숨겨진 지하실이 있고 그곳에는 “연금과 같은 돈 문제들이 엮여 있기 때문에” “존엄과 인권이 없이” 그저 억지로 생명만 유지하는 상태의 노인들이 갇혀 있다. C9은 여기서 윤리 시스템의 치명적인 모순을 경험한다. 그 결과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요양병원은 노인학대 정황을 숨기고 아주 편리하게도 로봇인 C9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차페크 행성’ ‘도민 본부장’ 등의 이름에서부터 인간형 로봇이라는 중요한 요소와 3부작 구성까지, 카렐 차페크의 기념비적인 SF 희곡 ‘R. U. R.’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그러므로 차페크의 ‘R. U. R.’처럼 결말에서 로봇들이 전격적으로 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확 정복하기를 기대했는데! 실제로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독자님들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3부에서 차페크의 세계적 로봇 혁명에 버금가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결말에 대해서는 이렇게만 말하겠다.
차페크가 ‘세 개의 적’을 읽었다면 자신의 유산이 이처럼 정교하고 찬란한 이야기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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