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군함 건조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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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던 미국 조선업의 영광은 일본과 유럽 등 경쟁국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높은 인건비와 열악한 설비 탓에 미국 조선소는 경쟁국보다 비용은 2~3배 비싸고, 납기도 늦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주요 선사는 선박 발주처를 미국에서 한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미 해군의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시울프급(Seawolf-class) 공격용 핵잠수함은 미 해군 핵잠수함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난 모델이다. 고속 항해가 가능한 데다 놀라운 정숙성으로 ‘바다의 암살자’로 불린다. 2021년 10월 시울프급 2번 함 코네티컷이 남중국해에서 미상 물체와 충돌해 함수 부분이 대파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와 조선소에서 수리를 받기까지 무려 20개월을 대기해야 했다. 조선소의 낮은 작업 효율 탓에 미 해군이 긴급 수리 계약을 발주했지만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몰락한 미국 조선소의 현실이다. 미국은 1920년 연안 항구를 오가는 민간 선박은 자국 내에서만 건조하도록 한 존스법을, 1965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게 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각각 도입해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해왔다. 결국 두 법안이 조선업 발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최근 미국 상원의원들 주도로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해외 기업에 미 군함 건조·수리를 막아온 번스-톨레프슨법을 60년 만에 수정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관련 법을 수정하려는 이유는 중국의 ‘해양 굴기’를 막기 위해서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해군력을 급격히 키우고 있다. 2000년만 해도 미국의 해군 함정 수는 318척으로 중국(110척)보다 세 배나 많았는데, 지난해엔 중국(370척)이 미국(295척)을 앞질렀다. 앞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이러니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 의회에 발의된 법안의 세부 조건으로 함정 건조 비용이 미 조선소보다 낮아야 하고, 외국 조선사는 중국 소유이거나 중국 투자를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을 명시했다. 이를 충족하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은 당장 배를 만들어 일선에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 신속하게 함정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은 한국이 일본을 크게 앞선다. 미 의회의 법안 발의가 한·미 군함 건조 동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고 할 수 있다. 동맹이 현실화해 미국이 세계 최강 해군력을 유지할지, ‘트럼프발’ 관세 폭탄 압박 속에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고로 제해권(制海權)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더러는 배 한척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기대를 품을 만하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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