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법치 ‘탈선’ 야당은 주류 선언
국민의힘은 정상궤도에서 완전히 탈선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2025년 2월12일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자의적 법 해석을 거론하며 “법치가 아니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인치”라는 막무가내식 비난을 했다.
권성동과 친윤들, 또 헌재 항의 방문
수석대변인 신동욱 의원도 2월11일 채널에이(A)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헌법재판소를 향해 “엿장수 마음대로”라며 “왜 이렇게 헌재가 시간에 쫓길까” “4월에 다가오는 두 분의 헌법재판관들의 임기 만료 시한 또는 이재명 대표의 항소심 재판 선고 일정, 이런 것들이 아니고서는…”이라고 했다. 이는 도를 넘는 발언이다.
두 명의 재판관 임기는 헌재가 고려할 만한 문제다. 대통령 추천 몫 재판관이어서 후임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추천해야 하는데, 이는 적극적 권한 행사라서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논란이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헌재가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좌우할 권한쟁의심판 결론을 내리는 것도 문제고, 결론이 나와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대로 하면 헌재는 2025년 4월18일 이후 6인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심리에는 7인 이상의 재판관 출석이 필요하다. 6인 체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즉,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사실상 헌재를 마비시키는, 헌정 유린을 시도하고 있다. 헌정 수호를 기관의 목적으로 하는 헌재가 재판관 두 명의 임기 문제를 실제로 고려한다면, 현행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이런 경우를 피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이는 당연하다.
신동욱 의원이 말하는 헌재의 또 다른 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항소심 재판 선고 일정’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은 음모론이다.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한 선거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목적 아니냐는 건데, 아무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이건 윤석열의 ‘침대 축구’를 물타기하려는 프레임 전환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집권당이 이렇게 내란 우두머리 용의자의 헌정 유린 시도를 거드는 걸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의힘의 탈선은 권성동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며 야당 비난에 연설 대부분을 할애했다. 잘못했지만 잘못한 이유가 다 있다는 식의 사과가 과연 사과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렇게 상대편을 비난하는 건 보통 야당이 취하는 태도다. 여당 역할을 포기한 거라고 해도 할 말 없는 모습이다. 돌아보면 윤석열 정권은 2년 반 넘게 통치에서 손을 놓고 남 탓으로 일관했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는 이러한 행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었다.
‘회복과 성장’ 전제한 대선 청사진
반면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막 집권한 여당을 떠올리게 했다. 언론은 좌측깜빡이와 우측깜빡이를 동시에 켰다는 등의 평가를 하고 있다. ‘기본사회’ 개념이 명시되고 주 4일제를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 필요성 등이 언급된 반면, 애초 재계의 기대를 모았던 주 52시간제를 우회하는 대안 등은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설문의 전체 내용을 잘 봐야 한다. ‘기본사회’는 목표이기는 하되 당장의 실현은 유예된 느낌이다. ‘회복과 성장’이 먼저 전제되기 때문이다. 회복은 추경 편성으로, 성장은 A(인공지능)·B(바이오)·C(콘텐츠)·D(방위산업)·E(에너지)·F(제조업) 분야에서의 산업정책 구현으로 달성된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식의 실용주의가 적용된다.
그러한 관점이라면, 산업정책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 당연히 규제 완화도 관철해야 할 것이다. 재계가 요구하는 노동유연성도 확대해야 하는데,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안전망 확충은 이의 반대급부다. 이를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뤄내겠다는 게 이재명 대표의 ‘잘사니즘’인데, 사실 과거 정권도 비슷한 얘기를 ‘네덜란드 모델’ ‘유연안정성 모델’ 등의 틀로 검토한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이재명 대표의 연설은 좌클릭 또는 우클릭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이 연설은 일종의 주류 선언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주류적 관점과 정책, 대안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걸로 읽힌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주류적 관점을 들고나올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가령 2017년 문재인 후보의 ‘소득주도성장’은 비주류적인 것이었다. 당시 이러한 비주류적 대안이 필요했던 이유는 ‘보수정권이 추진한 주류 정책은 실패했다’는 선행 담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비록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중도하차 하긴 했으나 ‘이명박근혜’ 정권은 정책적 색깔이 있는 집단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다르다. 앞서도 짚었듯 임기 내내 무엇을 하려고 집권했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책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불법적 비상계엄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대한민국은 황무지나 다름없게 됐다. 주류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주류가 나타나 뭔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주류적 관점을 내세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인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연설에서 비주류적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뤄졌다. ‘빛의 혁명’ ‘직접민주주의’ 등의 수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서 다뤄진 것은 국민소환제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 국민소환제마저도 어떤 맥락에서 왜 필요한지는 분명하게 설명돼 있지 않다. 더군다나 국민소환제 도입은 실효성을 갖추려면 제도적으로 선결돼야 할 것이 많은데다, 양극화가 심화된 정치 현실 속에서는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에도 부딪히게 돼 있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만한 논리가 함께 제시됐어야 했는데, 이재명 대표의 이번 연설에 그런 대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소환제가 이 연설에서 담당하는 것은 일종의 ‘알리바이’다.
지금 중요한 것이 ‘이재명의 승리’일까
이제 어찌 되는 것일까? 민주당이 대선을 주류의 관점과 대안으로 치르는 것은 이제 불가피하다. 왜? 그래야 승리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주류의 태도로 치러 승리한다면, 집권 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표가 반도체특별법 도입 논의에서 주 52시간제에 대한 예외 적용을 두고 한 발언 때문에 민주당이 혼란에 빠졌던 것은 바로 이런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거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요구는 단지 주류적 해법으로 답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거리의 반짝이는 응원봉들은 용산의 윤석열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작은 윤석열들까지도 탄핵·체포·구속하라고 요구했다. 그렇다면, 무책임한 국민의힘과 주류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통치 권한을 놓고 일합을 겨루는 것 외에 지금 한국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비주류들의 민주주의는 이 질문에 지속적인 답을 내놓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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