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가 그 수준밖에 안 될까요? [내 아이 상담법]
무언가를 개념화하는 도식화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 의미해
경험·지식·정보가 중요한 역할
도식화의 다른 이름은 ‘선입견’
부모와 아이 관계에도 영향 미쳐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나
사람들이 경험과 이해를 통해 무언가를 판단하고 개념화하는 것. 이를 도식화라고 하는데, 간혹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이는 자녀와의 대화를 막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도식화의 오류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14/thescoop1/20250214104105936xtil.jpg)
심리학엔 도식(schema)이란 개념이 있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인지과학·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도식화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거나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험·지식·정보 등을 구조화하고 조직화해 세상을 이해하거나 개념화하는 게 도식화의 과정이어서다.
조금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쉽게 설명해보자. 흔히 사람들은 심리 상담사를 이해심이 높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심리 상담이 이뤄지는 상담실을 따뜻하고 조용한 공간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상담사와 상담실을 '이해심이 높은 사람' '따뜻하고 조용한 것'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상담사와 상담실을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도식화라는 과정이 작동한다. 직접 상담을 받았던 경험이라든가 매스컴에서 조명했던 상담사와 상담실의 모습, 상담을 받은 친구나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가 상담사와 상담실의 개념화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이처럼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해 인식하는 과정을 도식화라고 한다.
물론 도식화의 결과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고급 음식점에 남루하고 지저분한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비싼 음식을 시키는 걸 봤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사람들의 열에 아홉은 그 남자가 음식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판단할 것이다. 그 가운데 몇몇 사람은 그 남자가 음식을 먹은 후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갈 게 뻔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남자에 관해 알고 있는 건 남루하고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정보만으로 남자의 신분이나 인성을 판단하고, 개념화한다. 도식화의 다른 말이 편견 또는 선입견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선입견이라는 오류를 맞닥뜨리지만 거기서 자유로워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가 최근 상담한 한 고등학생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상담에 끌려오다시피 한 아이는 하고 싶은 것도, 의욕도 없었다. 아이는 "학교도 가기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아이의 부모님은 원래부터 그랬다고 푸념했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냈다"며 "태권도·피아노·미술학원 등 다니고 싶다는 학원은 모두 보냈지만 한달을 넘게 다닌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학교는 꼬박꼬박 다녔다"며 "고등학생이 되더니 이마저도 싫다고 하니 무척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아이의 나태한 태도가 문제라는 거였다.
과연 그럴까. 아이의 이야기는 달랐다. 상담을 해보니 부모님은 모르는 사연이 있었다. 아이가 의욕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에겐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한 친구 3명이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면서 혼자만 친구들과 다른 학교에 진학했다. 아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생활이 무섭고, 싫다고 말했다. 혼자 방황하는 사이 친했던 친구들과도 멀어졌고, 새로운 고등학교 친구들을 쉽게 사귀지도 못했다.
아이가 부모님에게 고민을 얘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용기를 내 고민을 털어놨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싸늘했다. 학교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마음에 안 드니 또 그만두려고 한다는 핀잔만 줬다고 아이는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부모님은 절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라고 단정하곤 입과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이와 부모는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를 스스로 만든 틀에 가두는 우를 범했다. 아이는 부모는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강압적인 존재로 도식화했다. 반대로 부모는 아이가 참고, 노력하기보단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내고 포기하는 나쁜 아이라는 도식화에 빠졌다.
![부모가 먼저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야 대화가 수월해진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14/thescoop1/20250214104109056aoai.jpg)
이렇다 보니 부모로선 아이가 얘기하는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공감하기 어렵다. 과거 무언가를 쉽게 그만뒀다는 경험을 근거로 "얘가 또 그런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가 일쑤다. 아이도 부모님에게 자신의 상황을 자세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어차피 답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도식화를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든다. 문제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보다 이미 굳어진 가치관에 맞추려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자녀와의 대화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우리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제 곧 새학기다. 그런데도 늦잠을 자는 아이를 보고 "공부할 의지가 없구나"란 생각이 든다면 이는 아이를 나쁘게 도식화한 결과일 수 있다. 부모의 도식화도 틀릴 때가 많다. 무엇이든 신뢰를 보내는 게 먼저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