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폭동이 십자군 성전이라고? [사람IN]

이상원 기자 2025. 2. 1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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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63)는 스스로 '이중 전과자'라고 소개한다.

최근 박승찬 교수는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오르골)을 펴냈다.

십자군을 보는 시각 역시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한 정치인이 1월19일 윤석열 지지자들의 법원 공격을 '아스팔트 십자군'이라고 일컬은 데 대해 박 교수는 "그 무지몽매함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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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의 저자 박승찬 가톨릭대학교 교수. ⓒ시사IN 박미소

박승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63)는 스스로 ‘이중 전과자’라고 소개한다. 전공을 두 번 바꾼 이력 때문. 학창 시절 천주교 사제가 되길 원했지만 “사회 경험이 있어야 한다”라는 부친의 조언에 따라 일반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신학부를 마치고 독일 유학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 신학보다는 ‘현실에 투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대신 중세철학 박사학위를 따서 귀국했다.

최근 박승찬 교수는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오르골)을 펴냈다. 중세사는 그의 주전공이 아니다. “철학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따로 공부한 분야다. 대중적 관심은 높지만 정작 십자군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근현대 제국주의를 십자군에 투영하는 이들도 있고, 반국가적 폭동을 십자군의 “성전”이라고 상찬하는 자도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고 이를 교훈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하자는 게 박 교수가 책을 쓴 취지다.

박 교수가 소개하는 중세는 이른바 ‘암흑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찬란한 중세 문명을 애써 어둠 속에 묻은 것은 근대 이성에 대한 서구 사회의 맹신이었다. 십자군을 보는 시각 역시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오랫동안 오독된 바와 달리 십자군 전쟁의 근본 원인은 종교 그 자체보다는 “종교의 세속화”, 즉 변질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박 교수가 드러내는 중세의 군상 모두가 광신에 휩싸여 이교도에게 돌격하는 성전사는 아니다. 참사는 오히려 정치 지도자들이 세속적 탐욕을 추구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고려한 결과 발생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완전히 깨진 사례”가 십자군 전쟁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승찬 교수는 지난해 12월12일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염원하는 철학자들의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한 정치인이 1월19일 윤석열 지지자들의 법원 공격을 ‘아스팔트 십자군’이라고 일컬은 데 대해 박 교수는 “그 무지몽매함에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계엄 이후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자들을 보며 박 교수는 ‘은자 피에르’를 떠올렸다. 예루살렘 순례객들을 이슬람 세력이 핍박하고 있다며 설교해, 십자군 전쟁의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다.

책 후반부 ‘십자군 전쟁에서 배울 수 있는, 평화를 위한 지혜’ 중 ‘전쟁을 피하려면 서로를 알라’고 적은 부분을 물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상대와 우리는 소통해야 할까. 박승찬 교수는 “나도 화가 치밀어 실천하기 어렵다”라고 전제한 뒤, 김수환 추기경의 ‘불의에 대해 분노하되 분노와 증오를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불의한 ‘저들’도 존엄한 부분이 있다는 게 그리스도교의 입장이고, 대화를 통해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는 게 종교인의 지향이라는 것. 그것이 십자군 전쟁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 종교가 익힌 교훈이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진정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독자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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