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벚꽃 필 무렵, 뽀얀 알맹이 ‘만개’…입안 가득 채우는 봄의 맛 ‘벚굴’
민물·바닷물 만나는 기수역서 자라
손바닥보다 크고 비린 맛·짠맛 덜해
1~5월이 제철…잠수부가 직접 채취
구우면 쫄깃, 담백함 원하면 찜 추천
단백질·아연 등 풍부…‘강 속의 보약’
봄이 남쪽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경남 하동 섬진강 변에도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지런히 봄을 맞는 게 꽃뿐이랴. 섬진강 맑은 물속에서 군락을 이룬 ‘벚굴’도 하얗게 피기 시작한다.
벚굴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산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섬진강을 따라 남해 바닷물이 깊숙이 드나드는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에서 볼 수 있다. 바다가 아닌 강에서 자란다고 해서 ‘강굴’, 속살이 야무지지 않아 ‘벙굴’로도 불리지만 벚굴이라는 이름이 가장 익숙하고 멋스럽다. 벚굴이라 불리는 데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벚꽃이 필 무렵에 먹어서라는 이야기, 강 속에서 입을 벌린 벚굴의 모습이 마치 흐드러지게 핀 벚꽃 같아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벚굴을 처음 보면 크기에 놀란다. 껍데기가 20∼30㎝에 이르며 큰 것은 성인 팔뚝 길이만 하다. 3년 미만은 이보다 작고 7년부터는 자연 폐사하니 주로 3∼5년산을 채취한다. 벚굴의 나이는 껍데기에 층을 이루는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1월 중순부터 살이 차기 시작해 5월초까지가 제철이다. 일반적으로 먹는 바다 굴인 참굴과 달리 비린 맛이 거의 없고 짠맛도 덜하다. 커다란 속살을 입안 가득 먹어도 식감이 부드러워 부담이 없다. 알이 큰 만큼 단백질·아연·무기질도 풍부해 하동 주민들은 ‘강 속의 보약’이라고 표현한다.
벚굴 맛을 아는 이들은 입춘이 지나고 봄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면 섬진강으로 모여든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엔 신선한 벚굴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곳곳에 있다.
‘섬진강강굴식당’(사장 김기관)에선 30년차 베테랑 잠수부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채취한 벚굴을 판매한다. 벚굴은 양식이 되지 않아 잠수부가 수심 10∼15m 아래까지 잠수해 직접 손으로 채취한다. 개체수 보호 등의 이유로 허가권이 있는 사람만 채취할 수 있는데 현재 하동·광양(전남) 지역을 합쳐 10명 내외라고 한다. 아들 김민수씨는 1월초부터 강에 수시로 들어가 벚굴 알이 얼마나 찼는지 확인한다.
“1월부터 잠수부들이 산소통을 실은 배를 타고 강 하구로 나가요. 산소통 호스를 입에 물고 강물로 들어가, 바위에 붙은 건 긴 쇠꼬챙이로 젖혀서 떼고 바닥에 박힌 건 손으로 뽑아 그물망에 넣어 나오죠. 6시간 이상 작업하면 300∼400㎏ 채취할 수 있어요. 옛날엔 톤 단위로 채취했지만, 벚굴이 살 만한 깨끗한 기수역이 줄어들어 더 귀해지고 있죠.”
김씨는 벚굴 살이 꽤 찼다며 커다란 껍데기를 쩍 갈라 보였다.
“날씨가 추운 2월엔 생굴로도 맛볼 수 있어요. 사람들은 벚꽃이 필 때 먹으면 좋다고 많이 오시는데 오히려 벚꽃이 진 다음이 산란기 직전이라 살은 가장 알차요.”
벚굴의 뽀얀 살을 제대로 맛보려면 별다른 양념 없이 구워 먹거나 쪄 먹는 게 좋다. 먼저 구이. 테이블마다 마련된 화로에 얼굴만 한 벚굴을 껍데기째 올린다. 화로 뚜껑을 덮어 열을 가두고 굴 껍데기가 튀어 오르는 걸 막는다. 5분 정도 기다리니 탕탕 껍데기가 튀는 소리가 들린다. 덮어놓은 뚜껑을 열자, 온천에서 꺼낸 듯 벚굴 위로 하얀 김이 올라온다.
벚굴이 스스로 입을 벌리기 전에 껍데기를 열어 속살을 꺼내야 한다. 너무 익히면 알이 작아지고 질겨지기 때문이다. 껍데기가 워낙 두꺼워 여는 것도 만만치 않다. 가장자리를 두들겨 틈을 만들고 그 사이로 칼날을 밀어 넣는다. 살짝 익힌 반숙 상태의 알과 껍데기에 우러난 국물을 함께 뚝배기에 담아 마저 익힌다. 이렇게 먹으면 쫄깃한 굴을 입안 가득 먹을 수 있다. 벚굴찜도 구이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냄비에서 살짝 익힌 후 뚝배기에 담는다. 보는 맛과 쫄깃함을 원한다면 구이를,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좋다면 찜을 추천한다.
벚굴을 먹을 땐 화려한 소스나 반찬이 필요 없다. 하동산 매실로 만든 장아찌와 김치를 얹어 삼합으로 먹으면 개운하게 즐길 수 있다. 벚굴죽은 든든한 마무리로 제격이다. 각종 채소와 굴을 작게 다져 뭉근하게 끓인다.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짭짤하고 구수한 풍미가 느껴진다.
벚굴은 올봄을 놓치면 다음 봄을 기다려야 한다. 다가오는 휴일엔 바지런을 떨며 하동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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