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 초콜릿처럼, 사랑에 녹아든 이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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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불리는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 를 쓴 제프리 초서(1343~1400)의 시 '새들의 의회'의 한 구절이다. 캔터베리>
이 시는 오늘날 2월 14일을 사랑을 속삭이는 날로 기억하게 만든 신호탄이었다.
그동안의 '썸'을 초콜릿으로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려는 달, 봄이 오려고 움찔거리는 달.
발레계에서 2월은 10대 발레무용수들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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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천천히 굽히며 펴는 '퐁뒤'
'녹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례
천천히, 끈적한 느낌으로 수행해야
사랑도 발레도 '무게중심'이 포인트
성 밸런타인데이 날이었다/
그날 모든 새가 거기로 와 자기 짝을 찾는다네/
중세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불리는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제프리 초서(1343~1400)의 시 ‘새들의 의회’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오늘날 2월 14일을 사랑을 속삭이는 날로 기억하게 만든 신호탄이었다. 700행으로 이뤄진 시에서 모든 새는 자신의 짝을 찾으려 신전 앞에 모여 토론을 벌인다. 바로 그날이 성 밸런타인 축일이다.
이래저래 2월은 달콤한 달이다. 그동안의 ‘썸’을 초콜릿으로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려는 달, 봄이 오려고 움찔거리는 달.
발레계에서 2월은 10대 발레무용수들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달이다. 해마다 2월이면 전 세계 10대 무용학도들이 로잔콩쿠르를 치르기 위해 스위스 로잔으로 몰려든다. 이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인재에게는 전 세계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발레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경비가 주어진다. 로잔콩쿠르를 거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사례로 강수진, 박세은 무용수를 꼽을 수 있다. 올해는 16세의 발레리노 박윤재가 왕관을 차지했다.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스위스와 발레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발레의 동작 중 퐁뒤(fondu)를 떠올리게 된다. 퐁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단어가 아닌가? 그렇다. 치즈와 와인, 초콜릿을 녹여 고기와 채소를 푹 담가 찍어 먹는 스위스의 대표 요리다. ‘녹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퐁드르(fondre)’에서 유래했다.
발레의 동작 ‘퐁뒤’도 치즈나 초콜릿에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끈적하게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릎을 구부려서 드미플리에 하며 내려가되 한 다리는 바닥에 그대로 붙어서 지지하고, 다른 다리는 공중에서 움직인다. 이 동작을 할 때 꼭 지켜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내려가는 움직임에서도 호흡을 밑으로 완전히 꺼트리지 않고 다시 위로 끌어올릴 수 있게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게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는 게 핵심이다. ‘지젤’의 2막에서 윌리들의 군무 중 아라베스크 퐁뒤, ‘잠자는 숲속의 공주’ 1막 라일락 요정의 시손 퐁뒤를 볼 수 있다.
퐁뒤라는 동작은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클래스에서 퐁뒤를 할 때 발레 교사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동작이 끊어지지 않게 끈적하게 움직이라고. 퐁뒤를 할 때는 초콜릿의 달콤함과 사랑의 설렘에 푹 빠지듯 몸을 그 안에 빠트리고 누구보다 끈적하고 끈끈하게 그 관계와 감정에 밀착하지만, 푹 빠진 그 순간에 매몰되면 그대로 함께 침몰한다고.
퐁뒤에서 땅을 향해 내려가는 순간이야말로 나의 무게중심을 가장 단단히 지켜야 하는 시간인 것처럼 사랑도 그렇다. 춤에, 사랑에, 올해 2월은 그 안에 푹 빠졌다가 다시 나를 세우길 반복하며 달콤하게 지내면 어떨까 싶다. 인생은 짧고 마침 2월도 1년 중 가장 짧다.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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