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처·소비자보호국 이어 교육·국방부 겨눠 '극단 절감' 기업 성공 전략…"비용 알레르기 있어" 세계적 저항에 자산 130조↓…법원도 제동
타임지의 최신호 표지. 일론 머스크가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비용을 절감하는 사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묘사는 정확합니다. X(구 트위터) 소유주, 스페이스X·테슬라의 CEO이자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성부(DOGE)'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 얘기입니다.
머스크는 트럼프가 쥐어준 '효율성'이라는 칼을 정부 곳곳에 휘두르며 미국 공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2주 만에 두 개 부처가 날아갔습니다. 이젠 교육부 국방부 등 주무 부처도 겨눕니다. "정부 예산 2조 달러를 줄인다" 머스크의 목표입니다.
사실 이처럼 극단적인 '감축'은 그가 일궈낸 혁신적인 기업들의 성공 비결이기도 합니다. 외신들은 머스크가 과거 기업에 했던 방식과 현재 정부에 하는 방식의 유사점에 주목합니다. 이 방법, 정부에도 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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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낭비"…예상불가 '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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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트럼프 취임 뒤 폐쇄된 미 정부 부처는 두 곳, 국제개발처(USAID)와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입니다. 둘 다 DOGE가 개입했습니다.
트럼프는 DOGE가 연방예산 지출 결제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5조 달러 규모의 예산 지출을 샅샅이 볼 수 있는 엄청난 권한이죠. 머스크는 이를 보며 낭비라고 판단하는 기관을 "범죄 조직", "좌파 독사들의 소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합니다.
머스크의 X 게시물. 국제개발처가 "범죄조직"이며 "죽어야 할 때"라고 적었습니다. 출처: X @elonmusk
놀라운 것은 '속도'입니다. 폐쇄는 하루아침에 벌어졌습니다. 국제개발처 직원들은 '기관 폐쇄' 이메일을 받은 다음날 아침 건물에 들어갈 수 없게 됐습니다. 웹사이트는 사라지고, 수 천 명이 한꺼번에 행정 휴직 명령을 받았습니다.
부처 직원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어느 날 문에 'DOGE'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고, 공무원 배지를 차지 않은 낯선 젊은 남성들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전했습니다. DOGE는 '26세 미만 남성 엔지니어 6명' 정도로 구성됐다고 알려졌습니다. 소비자금융보호국 역시 DOGE 직원들이 방문한 다음 날 폐쇄 절차를 밟았습니다. 뉴욕타임즈는 "공무원들에게 감축 속도와 규모는 충격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DOGE의 칼 끝이 어디를 향할지는 예측 불가입니다. 일단 교육부와 국방부가 유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 전(9일) 머스크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24시간 내 교육부와 국방부도 살펴보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상출처: Fox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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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깎고 뒤처리"…'트위터·스페이스X·테슬라'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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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과감한 절감은 머스크가 기업에서 써 온 전략입니다. '비용 알레르기가 있다'고 평가될 정도로 집요했죠.
극단적인 예로,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는 사무실 청소 비용도 내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악취 가득한 화장실에 화장지를 직접 가져가서 썼습니다. 때론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비용을 줄이는 머스크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일단 깎고 나중에 처리(Slash First, Fix Later)하는 전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인력 운영도 비슷합니다.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하고 6개월간 인력의 75% 이상을 해고했습니다. 대부분 하루 아침에 이메일이나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살아남은 건 머스크를 비롯한 소수의 '워커 홀릭'이었습니다. 최근 DOGE 사무실엔 '수면 포드'가 배달됐습니다. 사무실에서 자면서 일하겠다는 것이죠. 과거에도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자는 걸 자랑스러워했던 머스크입니다. X 게시물에선 "DOGE는 한 주에 120시간 일한다"며 "관료주의에 젖은 이들은 주 40시간이라도 일하면 다행"이라고 비판했습니다.
DOGE에 배달된 수면 포드의 모습. 게시물 작성자는 수면 포드 회사의 사장입니다. 출처: X @m_franceschetti
기업에서 저비용 전략은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파산 위기의 트위터를 기사회생시켰고, 경쟁사보다 더 저렴하게 전기차와 로켓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페이스X가 상업용 우주 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극단적인 원가 절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즈는 설명했습니다.
머스크의 방식을 좋아하는 직원도 많았습니다. 과거 머스크와 일했던 직원들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론 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자본과 관심을 끌며 매우 실험적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습니다. 또 "일에 헌신하는 상사에 충성심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변덕스럽고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은 "의견이 충돌하면 하루 아침에 해고당한다"며, 앞으로 정부에 벌어질 일은 "장시간 노동과 해고"라고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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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도 통할까…"법원·의회가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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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머스크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머스크 반대 시위가 열리고, 테슬라 주가 하락에 자산도 두 달 만에 130조나 줄었습니다. 과연 트럼프를 등에 업은 머스크는 DOGE에서도 성공 신화를 쓸까요.
정부에는 민간 기업에는 없는 제도적 장치가 있습니다. '법원'과 '의회'입니다. 전문가들은 "법으로, 안 되면 정치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 법원은 DOGE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지난 7일 법원은 국제개발처 직원들의 행정 휴가 명령에 대해 중단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이 의회 입법으로 설립된 기관을 폐쇄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사흘 전(8일)엔 DOGE에 부여됐던 재무부 결제시스템 접근 권한도 일시 중지시켰습니다.
야당도 가만히 있진 않습니다. 민주당은 어제 '트럼프의 불법 행위 제보를 받는다'며 내부 고발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댄 어먼 노스이스턴대 법학 교수는 "법원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고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의회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와의 허니문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릅니다. 트럼프는 국제개발처 폐쇄 뒤 머스크에 대해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다"며 역할에 한계를 지었습니다. 머스크의 '비용 깎기' 정부 버전은 어떻게 진행될지, 무엇이 정부를 보호할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