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Here)’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의 주름이 깊어가는 시간[리뷰]
美 중산층 가족의 거실을 떠나지 않는 두 시간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유적지 건너편 평범한 가정집에 진짜 역사가 있다. 영화 ‘히어’를 보러 들어간 관객은 벤저민 프랭클린(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의 사생아 윌리엄 프랭클린의 저택을 2시간 내내 지겹도록 봐야한다. 유적지는 울타리가 둘러져있고, 사람들은 ‘이 집’(여기·Here)의 거실창을 통해 마주보는 유적지를 가리키며 ‘저 집에 누가 살았었냐’고 묻는다. 반면 이름없는 ‘이 집’은 내내 거실만 나온다. 영화는(카메라는) 도무지 이 집의 거실을 떠나지 않는다. 하물며 식구들의 방이나 주방, 대문, 마당조차 코빼기도 안보인다. 영화가 끝마칠 때쯤에야 드론샷을 통해 영화 시작 2시간만에 처음으로 ‘이 집’의 외관을 보여준다. 지극히 평범한 미국 동부 교외의 중산층 2층집. 그러나 이 평범한 집을 마주하는 것은 백악기부터 축적된 어마어마한 역사를 보고 난 뒤다.
영화 ‘히어’는 예고편만 보면 할리우드 대표 배우이자 명작 ‘포레스트 검프’의 두 주인공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를 내세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내용도, 흥행도)안전한 가족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개방식은 마냥 쉽지 않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사진에 담아 콜라주 하듯 이어붙이더니 별안간 백악기의 지구로 돌아간다. 땅에서 용암이 끓고 벨로시랩터 같은 공룡들이 뛰어다닌다. 이 무슨 뜬금없는 전개인가 싶지만, 카메라는 개의치 않고 빙하기를 거쳐 홀로세로 들어선다. 초기 아메리카인디언 커플이 등장하고 나서야 다시 현대의 미국으로 돌아온다.
‘판매중’(For Sale) 푯말이 붙은 ‘이 집’의 거실에 들어선 백발 노인 톰 행크스. 드디어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되나 싶을 때 다시 시간은 널뛴다. 영국 식민지시대, 1차 세계대전 직후, 2010년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가족들이 ‘이 집’의 거실을 둘러보고, 계약하고, 가구를 채우고, 발 붙이며 살다가 모종의 이유로 이사한다. 주인공 톰 행크스와 로빈 라이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채 장장 20여분이 지나간다. 정신은 없지만 지루하진 않다. 지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꼭 알아내고 말겠다는 집념이 들만큼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한다.
저메키스 감독은 “언젠가 몇백 년 된 집에 머문 때가 있었다. 돌벽들을 바라보며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를 지나간 수많은 삶을 떠올렸다”며 “평생에 걸친 영화 제작을 하느라 카메라 하나가 하나의 위치에서 수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다뤄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집에 살았던 수많은 가족들 중 1차 세계대전의 상이군인인 알과 그의 아내 로즈,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이야기 만큼은 장장 60년의 서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과 로즈는 이 집을 계약하고 아이를 셋 낳는다. 첫째 리차드(리키)가 바로 톰 행크스다. 18살이 된 리키가 데려온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로빈 라이트가 연기하는 마거릿이다. 18살이라니. 두 배우의 실제 나이는 각각 68세(톰 행크스·2024년 기준), 58세(로빈 라이트)다. 연기의 신(神)이 강림해도 18살의 얼굴을 연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AI 디에이징’ 기술을 만나면 다르다. 두 배우는 디지털 메이크업을 통해 ‘포레스트 검프’ 시절보다도 더 젊어졌다.

어느 저녁 알과 로즈가 잠들고 거실엔 리키와 마거릿만 남았다. 며칠 뒤 둘은 가족들에게 임신소식을 알린다. 결혼식은 거실 벽난로 앞에서 소박히 열렸다.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딸 바네사도 집 소파에서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아 낳았다. 과거 미국엔 3대가 복작거리며 사는 집이 흔했을까. 덕분에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미국의 대표 명절마다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파티를 하는 모습이 동화처럼 담긴다. 영화 ‘나 홀로 집에’처럼 미국 중산층 가족 판타지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히어’ 역시 충분히 눈이 즐거운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어찌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를 넌지시 보여준다. 자식을 낳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부모의 희생’과 동어(同語)라는 것을. 알은 리키를 비롯해 삼남매를 키우느라 적성에도 안 맞는 영업사원으로 뛰어야했고, 로즈는 원래 회사에 취업해 경리를 하고 싶었지만 아이 셋을 키우느라 집 안에만 묶여있었다. 돈을 받고 팔아도 될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리키도 만삭의 마거릿을 마지막으로 그리고는 이젤과 화구를 창고에 가둔다. 마거릿은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려 했지만, 그 역시 바네사의 엄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꿈을 접는다.
리키와 마거릿의 딸, 바네사는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된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동네 한 번 벗어나지 못하고, 봄날의 파리도 한 번 가본적 없는 엄마 마거릿과 달리 해외에 터를 잡고 로펌의 파트너변호사까지 올라간다. 세대를 지나며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도 이 가족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100여년동안 이 집의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맞은편 유적지는 그 안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집은 시간의 역사를 안고 오늘을 산다.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여자가 묻힌 뒷마당에서 그녀의 조개 목걸이까지 출토될 뿐만 아니라, 리키와 마거릿이 40년 부부생활 끝에 결국 이혼을 선택하며 집을 팔고 난 뒤에는 흑인 중산층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된다. 흑인 부부는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하는 아들을 거실 소파에 앉히곤 ‘경찰이 너를 불러세우면 침착하게 네가 총이 없다는 것을 주지시켜라. 그리고 그 경찰이 너를 순순히 보내주면 신께 감사해라’고 교육한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인권운동처럼 오늘날 미국의 첨예한 이슈까지 이 집에 살아있다. 그러니 진짜 미국의 유적지를 고르자면 이름 없는 가정집, 바로 ‘여기’(Here)가 더 알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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