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OECD 꼴찌인 서비스업 생산성

강현철 2025. 2. 1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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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한 나라의 생활수준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A country's standard of living depends on its ability to produce goods and services).

'맨큐의 경제학'에서 제시한 경제 10대 원리 중 하나다. 어떤 나라는 잘사는 반면 어떤 나라는 못사는 것은 국가 간 생산성의 차이 때문이다. 생산성은 단위 노동이나 자본 투입으로 만들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량이다. 1시간 일해서 어떤 상품을 100개 만들어내는 나라는 50개만 만들 수 있는 나라보다 잘 산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경제규모가 세계 12위권인 한국의 생산성 수준은 어떨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생산성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상당히 낮으며 제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시 말해 서비스업의 후진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뜻으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선 서비스업의 생산성 제고가 급선무라는 얘기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은 OECD 평균을 웃돈다. 구매력평가를 적용한 제조업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13만8000달러(2021년 기준)로 호주, 튀르키예를 제외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 회원국 평균(11만5000달러)보다 높다. 반면 서비스업은 6만6000달러로 제조업의 47.5%에 불과하고, OECD 평균(7만7000달러)을 한참 하회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전산업 생산성은 8만2000달러로 OECD 평균(8만9000달러)을 밑돌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NARS)에 따르면 제조업의 생산성은 2007~2017년 정체기를 겪었으나, 이후(2018~2022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기업들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와 반도체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 덕분이다. 반면 2007~2022년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2007년 3443만원에서 2022년 3663만원으로 15년동안 6.4% 높아지는 데 그쳤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정부, 기업, 소비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서비스업에 대한 정부 규제 및 지원 미흡이다. OECD가 발표한 상품시장 규제지수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서비스 분야 정부 개입 정도는 상당히 높아 최하위권(38개국 중 35위)에 속한다. 이에 비해 정부 지원 정책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지고 있다. 정부의 규제 수준이 높다는 건 정부가 서비스업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결과 서비스 기업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내수시장에 안주해 혁신과 투자를 등한시했다. 산업별 혁신 및 R&D(연구개발) 현황을 보면, 2019~2021년 전체 제조업체 중 43.7%가 혁신활동을, 43.3%가 R&D활동을 수행했다.하지만 서비스업체 중 2020~2022년에 혁신활동, R&D활동을 수행한 비중은 각각 27.6%, 17.8%에 그쳤다. 2021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R&D투자는 총 80조8000억원이었는데 이가운데 서비스업체의 투자 금액은 9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12.3%에 불과했다. 이는 서비스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도 제조업 제품보다 서비스업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시중에 유통되는 영화·방송 등 콘텐츠의 약 20%가 불법복제물이다.이런 상황에서 서비스업체가 대규모의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서비스업은 이질적인 업종들의 집합으로, 세부 업종별로 생산성 편차가 크다. 숙박·음식점업, 교육서비스업, 부동산업 등 이른바 생계형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현저히 낮다. 실직 또는 퇴직한 근로자들이 소규모의 자금을 갖고 별다른 준비 없이 창업이 쉬운 생계형 서비스업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는 시장 확대가 쉽지 않으며, 기존 시장을 서로 나누어 갖는 제로섬의 구조를 갖는다. 신규 노동 유입은 과잉경쟁을 유발하고 저생산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보통신업의 낮은 생산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정보통신업의 생산성은 미국·영국 등 주요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거의 꼴찌 수준이다.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투자 및 고급인력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 중 가장 많은 투자가 발생하고 있는 분야는 정보통신업이다. 2021년 정보통신업에 대한 R&D 규모는 46억달러였고, 이는 서비스업 전체 R&D의 43.1%에 해당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정보통신업에 대한 R&D투자는 각 각 1570억달러, 153억달러였다. 우리의 R&D 규모는 미국의 2.9%, 영국의 30.0%에 불과하다.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된 인력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의 생산성도 OECD 평균을 하회한다. 이 부문은 정부의 강한 규제 덕분에 다른 서비스업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나타내지만, 동일한 이유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법률·회계·건축·엔지니어링 등 전문서비스업의 자격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지만, 과도한 진입규제는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기도 하다. 금융업도 규제 덕분에 국내에서 높은 생산성을 나타내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높지 않다. 다만 주요국과 비교할 때, 금융업의 생산성은 OECD 평균에 근접해 있다. 이는 금융업계가 신규채용 억제, 명예퇴직 활성화 등으로 고용 총량을 축소하고, 가계대출 중심의 안정적 수익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복지업의 생산성은 서비스업 전체 평균을 소폭 상회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므로 보건· 사회복지업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부문은 공공성을 요구하고,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갖는다. 더욱이 보건·사회복지업의 성과는 정부지출과 밀접히 관련되는데, 공공부문의 경우 단가 상승이 쉽지 않아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우선 서비스업 투자에 대한 재정·세제지원을 제조업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생계형 서비스업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 정책은 자생력 확보보다는 보호에 집중됐는데 자생력 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보호 대책은 단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진단이다. 정부의 자영업 정책은 디지털 전환 촉진 등 자생력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며,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가 스스로 폐업을 선택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재기하거나 법인근로자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실효적 전직 훈련을 제공하고 재취업 인센티브를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라고 정부 측에 주문했다. 안중기 입법조사관은 "규제 샌드박스라는 '작은 규제 완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대상·지역·기간 등에 대한 제한을 과감하게 풀어 많은 서비스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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