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휴게시간에도 수당 지급한 혈액원: '혈세' 받는 대한적십자사의 민낯
대한적십자사 위반과 은폐 1편
전국 15개 혈액원 중 7곳
주말 특근수당 부당지급
대한적십자사 기관장들
2024년 6월 사실 확인
9개월째 부당지급 은폐
2016년 행정조치 무시
직원운영 규정도 위반해
# 대한적십자사. 재난재해 구호, 해외재난복구 지원, 혈액사업 등 '자기희생'을 담보로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그래서 대한적십자사의 제1 덕목은 도덕성이다. 이 공공기관이 국민의 헌혈(헌혈사업)과 적십자회비,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 하지만 대한적십자사가 '모럴해저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건 한두번이 아니다. 불법과 편법, 법인카드 유용, 성추행과 승진, 간부들의 제멋대로 출근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잊을 만하면 터져나왔다.
# 최근엔 '휴게시간 특근수당' 부당지급 논란까지 불거졌다. 더스쿠프의 단독 취재 결과, 대한적십자사의 일부 혈액원이 '주말·휴일 근무시 휴게시간'에 특근수당을 부당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문제를 2024년 6월에 인지했는데도 지금까지 은폐해 왔다. 전형적인 모럴해저드이자 혈세 낭비다. 더스쿠프가 이 논란에 펜을 집어넣었다.
대한적십자사의 일부 혈액원이 내부규정과 행정조치를 무시한 채 주말·휴일 근무 시 '특근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적십자사가 국민의 혈세와 적십자회비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란 걸 감안하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대한적십자사가 이 사실을 10개월 전 확인하고도 지금까지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대한적십자사의 '주말 특근수당' 부당 지급 논란을 단독취재했다.
대한적십자사의 일부 혈액원이 주말·휴일근무 시 휴게시간에 '특근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말이나 휴일에 군부대 등을 방문해 단체헌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 대한적십자사 직원운영 규정을 명백하게 위반한 행위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운영 규정 제41조는 '직원의 근무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1조의 2 출장 중 근무시간 규정에도 '직원이 출장, 기타 사업장외에서 근무하는 경우에 근무시간을 산정하기 곤란할 땐 1일 8시간 근무한 것으로 본다'며 '다만, 별도의 지시가 있었을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대한적십자사가 이 사실을 2024년 6월에 인지했는데도 9개월이 다 되도록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적십자사와 노동조합의 수상한 거래 정황도 들어 있다. 여기에 대한적십자사의 서열 2위인 사무총장까지 개입돼 있다. '별정직'인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회장의 명命을 받긴 하지만 인사관리를 사실상 주도한다. 정관상 임기도 없어 무한권력을 갖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의 헌혈과 적십자회비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정부 보조금도 받는다. 그 어디보다 투명성과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곳이란 얘기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 문제점➊ 은폐 = 시계추를 2024년 6월 23일로 돌려보자. 대한적십자사는 이날 서울남부혈액원에서 제2차 기관장회의를 열었다.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 현안을 공유하고,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표면적으론 평범한 기관장회의였지만 내부적으론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기관장회의에 올라온 안건 중 하나였던 '혈액원별 보충협약 등으로 인한 운영시간과 일수의 차이'가 그 과제였는데,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다. 단체헌혈 출발, 귀원 시간제한, 휴일 단체헌혈 출장 횟수 제한, 헌혈의집 운영시간 제한, 헌혈의집 토·일·공휴일 운영 지정, 국고 헌혈의집 휴무일 지정, 직원 단체행사 연간 횟수 명시, 주말 단체헌혈 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 등이었다.
7개의 문제점 중 가장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 '주말 단체헌혈 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골자는 인천, 대전·세종·충남, 경남혈액원이 주말·휴일 근무 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추가로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기관장들은 이 안건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기관장회의에 '휴게시간 논란'이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더스쿠프가 입수한 '노사공동 소통공감 워크숍 후속조치' 문건의 '현황 및 문제점'이란 항목엔 "주말 단체헌혈 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이란 문장이 명시돼 있다. 이 문제가 기관장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뒷전으로 내팽개쳤다는 얘기다.
■ 문제점➋ 무시된 행정조치 = 그렇다면 이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이슈일까. 아니다. 이 문제는 대한적십자사의 '고질병'에 가깝다. '휴게시간 특근수당' 문제가 얼마나 심했는지, 대한적십자사 측은 '행정조치'까지 하달한 적도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2016년 11월 25일 전국 15개 혈액원을 포함해 중앙혈액검사센터, 중부혈액검사센터 등에 보낸 '주말 및 공휴일 휴게시간 공제 관련 행정조치 알림'이란 공문의 내용을 보자.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 시 휴게 시간을 공제하라." 이는 그해 6월 '혈액 기획관리업무 추진실태 특정감사 결과'를 근거로 작성한 행정조치였다.
이 행정조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한적십자사도 "2016년의 행정조치가 유효하다"고 답했다. 지역혈액원이 이 조치를 근거로 '주말과 공휴일 근무 시 수당'에서 휴게시간을 공제한 사례도 있다.
서울남부혈액원은 2022년 4월 직원 2명의 근무확인서를 제출하면서 "주말 및 공휴일 근무 시 휴게시간을 공제 조치했다"고 명시했다. 인천, 대전·세종·충남, 경남혈액원이 대한적십자사의 '행정조치'를 무시한 채 특근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거다. 그 특근수당이 국민의 혈세란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 문제점➌ 모럴해저드의 확산 = 심각한 건 여기가 끝이 아니란 점이다. 주말·휴일 단체헌혈 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혈세를 갉아먹은 혈액원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언급했던 인천, 대전·세종·충남, 경남혈액원 등 세곳 외에 광주·전남혈액원, 대구·경북혈액원. 부산혈액원, 전북혈액원도 멋대로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했다. 대한적십자사 전체 혈액원 15곳 중 7곳이 규정에도 없는 특근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거다.
특근수당을 한두해 지급한 것도 아니다. 가령, 전북혈액원은 2015년부터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특근수당을 지급했다. 인천혈액원은 2016년, 경남과 부산혈액원은 2017년부터 특근수당을 줬다. 2016년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 시 휴게 시간을 공제하라'는 행정조치를 대놓고 어긴 셈이다. 대한적십자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혈액원 7곳이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한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대전혈액원과 전북혈액원은 노사합의를 근거로 제시했다. 인천·광주혈액원은 노사보충협약을 통해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했다. 심지어 경남혈액원은 특근수당을 지급한 근거를 '관례'라고 밝혔다.
[※참고: 이 부분에서 대한적십자사는 엇갈린 주장을 내놨다. '경남혈액원이 특근수당을 지급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취재팀의 질문엔 "노사합의"라고 답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때 A의원실에는 "관례"라고 했다. 더스쿠프는 의원실에 내놓은 답변을 받아들였다.]
모두 문제가 크다. 무엇보다 관례로 내부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노사협의도 마찬가지다. 대한적십자사 직원운영 규정 제42조에 따르면, 근무시간의 변경과 연장은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업무의 성질과 지역·기관의 특수성과 필요성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노사협의가 근무시간 변경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거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회장'을 패싱하고 근무시간을 바꾼 셈이다.
직원운영 규정만 어긴 것도 아니다. 재무운영 규정도 위배했다. 대한적십자사 재무운영규정에 제12조에 따르면 각 기관의 장은 예산편성지침에 의거해 매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본사에 제출한다.
이 예산안은 운영위원회의 심의, 중앙위원회 의결, 전국대의원총회 승인을 거쳐 확정된다. 주말 휴게시간에 특근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혈액원들은 이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 15개 혈액원 중 7곳에서 국민의 혈세를 맘대로 편성하고 집행했다는 얘기다.
류호진 노무법인 정율 노무사는 "임금 등은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보충협약으로 이를 변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업에서 노조별로 차별을 두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실제로 똑같은 일을 하는 혈액원 15곳 중 7곳만 주말 휴게시간에 특근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면서 "대한적십자사에서 내부규정을 지킨 곳은 불만을 품고, 내부규정을 어긴 곳은 노사합의나 보충협약, 관례를 근거로 내세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가지 사례를 더 들었다. "어떤 혈액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A혈액원에서 처음엔 단체헌혈을 외부로 가는 주말 근무자에게만 특근수당을 지급했다. 그러자 내근직이 불만을 제기했다. '우리도 주말에 근무하는데 왜 휴게시간에 수당을 주지 않느냐'는 거였다. 결국 A혈액원은 특근수당의 범위를 '내근직'으로 넓혔다. 이게 대한적십자사의 현주소다." 모럴해저드가 확산한 전형적인 사례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논란에 대한적십자사 서열 2위인 사무총장이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났다는 점이다. 도대체 대한적십자사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한적십자사 '주말 특근수당' 부당 지급 논란의 또다른 문제점은 2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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