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 날씨보다 매서운 ‘경기 한파’에 얼어붙는 자영업 생태계

허인회 기자 2025. 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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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시장 상인들 “차라리 코로나 때가 나았다…해마다 바닥 찍고 있어”
21년 만의 소비 절벽에 자영업자 대출잔액 1064조원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해마다 매출이 10%씩은 떨어진다고 봐야 돼. 명절 특수는 옛말이 된 지 오래됐어. 요즘은 물건값, 기름값 떼고 나면 하루 10만원도 손에 쥐기 힘들어. 워낙 경기가 안 좋고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니 가게 내놓는 곳들도 많아졌어. 그나마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인 여기도 요즘엔 권리금 요구하면 귀싸대기 맞을걸?"

2월3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동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날씨보다 매서운 '경기 한파'를 몸소 느끼고 있었다. 경동시장은 서울 전통시장 중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다. 동대문구 제기동역에서 청량리역 일대까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서울약령시장부터 청량리전통시장, 청과물시장까지 없는 게 없는 곳이다. 서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하루 유동인구가 2만~3만 명에 달한다. 실제로 한파 경보에도 시장 초입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 상당수였다. 이곳 역시 경기 침체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2월3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재래시장 ⓒ시사저널 임준선

수산물 판매 경력만 40년, 경동시장에서 장사한 지 10년 됐다는 김아무개씨(65)는 "상인들 사이에선 코로나19 때가 오히려 나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요즘엔 하루에 많이 팔아봐야 30만원인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고작 7만~8만원 남는다"고 말했다.

경동시장에서 30년 넘게 밤, 대추 등을 판매하는 부모님과 5년 전부터 일하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는 요즘 매출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 힘들다"고 입을 뗐다. 그는 "코로나 때는 재난지원금 덕분에 사람들이 소비하러 나왔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없고 물가도 크게 올라 사람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해가 지날수록 바닥을 찍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실제로 내수 부진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통계청이 2월3일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소매판매액 지수는 2.2% 낮아졌다. 대표적인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가 2003년(-3.2%) '카드대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며 21년 만에 최악의 소비 절벽이 나타난 것이다.

"연말·명절 특수도, 권리금도 없다"

특히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소비심리마저 위축되면서 연말 특수는 사라졌다. 12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과 비교하면 3.3% 감소했다. 지난해 3월(-3.4%)부터 10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감소 폭은 10월(-0.8%), 11월(-2.2%)보다 컸다.

경동시장 상인들 역시 계엄 후폭풍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경동시장 내 청년몰에서 중국 음식을 판매하는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6월부터 매출이 안 좋았는데,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2~3주는 정말 힘들었다"며 "12월 매출은 11월 대비 반 토막이 났다"고 밝혔다. 그는 "그나마 여긴 규모가 크고 유동인구가 많으니 유지는 되는데, 주위에 장사하는 다른 분들 얘기 들어보면 정말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말했다. 수산물을 판매하는 김씨도 "계엄 터지고 2~3주는 아예 그냥 공쳤다"며 "물건을 떼와도 사가는 사람들이 없으니 다 썩어서 버렸다"며 혀를 찼다.

명절 특수도 이젠 사라졌다는 것이 상인들 얘기다. 경동시장에서만 40년 넘게 조기를 판매하고 있는 석아무개씨(60)는 "지난 설 명절 때 작년의 반밖에 못 팔았다"며 "연휴가 기니까 다들 놀러 가서 시장에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길었던 설 연휴가 전통시장에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상인들은 계엄, 탄핵 등의 이슈들은 일시적 현상일 뿐, 경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유동인구는 많아도 실제로 구매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예전엔 물건 하나 사러 와서 둘러보고 서너 개를 사갔다면 지금은 딱 필요한 거 하나만 구매한다. 가격만 물어보고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하소연했다.

경기 침체 여파는 경동시장 내 임대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 상인은 "예전엔 조그마한 가게도 월세가 400만~5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50만~200만원으로 떨어졌다"며 "장사가 안돼서 월세 부담에 손들고 나가니 임대인들도 별수 있겠나"라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시장 초입에서 조금 떨어진 가게는 요샌 권리금이 아예 없다"며 "월세도 몇 년 전 120만~130만원 받던 곳이 지금은 70만~80만원이다. 이마저도 부담이 돼서 안 들어오는 상인이 숱하다"고 털어놨다.

전통시장의 종말을 얘기하는 상인도 있었다. 조기를 판매하는 석씨는 "여기 오시는 분들은 거의 70대 이상"이라며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더는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예전에 구리, 남양주 등 인근 경기도에서 찾아와서 사가곤 했는데 이젠 동네 곳곳마다 있는 대형마트로 간다"며 "우리 집사람도 대형마트 가서 카트 끌고 장 보는데 말 다했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야 내 가게를 갖고 있으니 월세 안 나가서 계속 장사하고 있지만 어찌해볼 방도가 없어 매년 고민 중"이라며 "10년 정도 더 하고 접어야지"라고 말했다.

2월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텅 빈 매장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줄어든 자영업자…"경착륙이라 더 위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위기는 비단 전통시장만의 얘기는 아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하루에만 150건이 넘는 점포 매도글이 올라오고 있다. 업종도 카페, 치킨집, PC방 등 다양하다. 폐업을 고민하는 글도 꾸준히 올라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자영업자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는 565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2000명 줄었다. 2021년(-1만8000명) 이후 처음 감소했다. 특히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전년보다 4만4000명 줄어든 422만5000명으로, 2018년(-8만7000명) 이후 처음 감소세로 전환했다. 직원을 둘 형편이 되지 않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잇달아 선택한 셈이다.

이성훈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영업 비율이 25%까지 올랐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라며 "결코 좋지 않은 시그널"이라고 우려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자영업 붕괴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예전에는 영세 자영업자 중심으로 붕괴가 일어났다면 지금은 방송과 유튜브에도 나오는 유명 맛집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임대료 부담으로 문을 닫는 실정"이라며 "붕괴 수준이 최근에는 자영업 중상층까지 올라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죽하면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여당 출신 기초단체장들조차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물량을 늘리고, 할인율도 확대하지 않았냐"고 덧붙였다.

'자영업 탈출'을 계획하는 이가 늘어나는 이유는 낮은 수입 때문이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연간 0원의 소득(소득 없음)을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105만5024명으로 집계됐다. 0원 초과 1200만원 미만 소득을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816만5161명에 달했다. 월 수입이 100만원에 미치지 못한 개인사업자가 922만185명에 달한 셈이다. 이는 전체 개인사업자 가운데 약 75.7%에 달하는 수치다.

연소득이 1200만원에 못 미치는 개인사업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엔 610만 명 수준이었다. 이후 2020년 661만 명, 2021년 794만 명, 2022년 860만 명을 돌파하더니 2023년 900만 명을 넘어섰다.

베이비붐 세대도 자영업…"정책 재설계 필요"

그사이 빚만 늘어가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펴낸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64조원을 넘어섰다. 저소득 및 저신용 자영업자 수는 올해 들어 각각 1만5000명, 3만2000명 늘었다.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로 비취약 자영업자 연체율(0.42%)의 10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취약차주란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자영업자를 말한다.

소상공인 출신으로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동주 전 의원은 좀 더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의원은 "단기적으로는 금융권과 논의를 통해 목구멍에 차오르고 있는 악성 금융 부채 문제부터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빈사 상태의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고 사회적 안전망에서 튕겨나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또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고용시장에 재편입되지 못한 채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노후자금을 쏟아붓고도 길거리에 나앉을 가능성이 높다"며 "자영업 정책 컨트롤타워를 세워 로드맵을 만들지 않는다면 자영업 문제가 더 큰 사회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성훈 교수 역시 "근본적인 정책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생계형 창업자들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영업 문제는 고용·부동산 시장 등 다양한 사회 영역과 맞물려 있어 파급력이 큰 만큼 촘촘하고 세밀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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