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음식으로 힘내세요” 온기 가득한 노숙인·노동자 쉼터

안태민 기자 2025. 2. 10.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파 속 사회 가장 낮은 곳 지키는 우리 옆의 천사들
지난달 2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따스한채움터를 찾은 노숙인들에게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들이 무료 배식을 실시하고 있다./대한적십자사 제공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1.8도까지 떨어진 지난 5일 오전 11시쯤 서울 용산구의 ‘따스한채움터’. 대한적십자사 직원 4명이 점심시간을 맞아 모여든 노숙인들에게 밥과 시래기 된장국, 김치 등을 배식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 7명은 자리를 정돈하며 연신 노숙인들에게 “식사 맛있게 하시라”고 했다.

따스한채움터는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2022년부터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인 사회 복지 시설이다. 365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영하면서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장갑이나 털 양말 등 한파 대비 방한 용품도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 번에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은 20명이지만, 이날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노숙인 약 200명이 몰렸다. 대한적십자사 직원 김준형(37)씨는 “추위에 떨지 마시고 이쪽에서 대기하시라”며 난로가 비치된 공간으로 노숙인들을 안내했다. 김씨는 “사실 매일 식사 시간마다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때로는 힘든 게 사실”이라면서도 “식사 한 그릇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이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 이 일을 계속하게 된다”고 했다.

추운 한파에 서울 각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은 대한적십자사뿐만이 아니다. 노숙인 무료 급식 단체 ‘참좋은친구들’의 신석출 이사장은 지난 1988년부터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고 있다. 노숙인들이 외부인 같지 않고 다 자신의 ‘아이들’ 같다는 신 이사장은 최근 극심한 한파에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노숙인들에게 침낭과 담요, 핫팩 등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신 이사장은 “우리가 춥다면 노숙인들은 얼마나 더 추울지 생각하며 봉사를 한다”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에서 동사하는 노숙인이 없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5일 오전 4시 40분쯤 서울 금천구의 한 편의점 앞에서 새벽일자리쉼터 근로자들이 새벽 노동자를 위한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이민경 기자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하 12도까지 기온이 떨어진 지난 5일 오전 4시 40분쯤 찾은 서울 금천구의 한 편의점 앞. ‘새벽 일자리 쉼터’라는 글씨가 쓰인 천막 아래 1m쯤 되는 간이 플라스틱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차와 커피를 탈 때 쓰는 스테인리스 온수기가 있었다. 책상 옆에는 추위를 달래기 위한 난로도 틀어져 있었다.

새벽 일자리 쉼터는 서울 금천구에서 새벽 노동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임시 쉼터로 매일 오전 4시부터 3시간 동안 열린다. 매일 120~150명가량 일용직 근로자가 찾는다는 이곳에는 3명이 근무 중이었다. 이곳에서 4개월째 일하고 있다는 60대 이모씨는 중년 남성이 천막 앞을 지나가자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추워요 추워”라고 말하며 따뜻한 커피를 타 건넸다. 이에 무표정하던 중년 남성의 얼굴에도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씨는 “이 일 말고도 본업이 따로 있지만,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에 너무 뿌듯하다”면서도 “요새 건설업이 불황이라 아침에 일감을 찾으러 왔다가 소득 없이 떠나는 이들이 10~20%는 돼 나까지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과거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약 40년간 일했다는 새벽일자리쉼터의 또 다른 근무자 이영춘(73)씨도 추위로 속눈썹에 이슬까지 맺혔지만, 계속 차를 타며 힘을 보탰다. 이씨는 “나는 건설 현장 경험이 있다 보니 여기 오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며 “매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쉼터를 이용하던 근처 인력사무소장 임상진(63)씨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분들 덕에 커피 한 잔할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며 “인력 사무실로 올라오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기서 따뜻한 음료 마시면서 기다리다 일하러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