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후 잡담·웹서핑·담배타임 … 김대리도 박부장도 '월급루팡'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최예빈 기자(yb12@mk.co.kr),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곽은산 기자(kwak.eunsan@mk.co.kr) 2025. 2. 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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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대개혁 대한민국 직장인 가짜노동 현실
근무시간 27% '딴짓' 허비
연령·직함 구분없이 심각
주식 투자하고 온라인 쇼핑
11시부터 점심 먹으러 외출
정작 점심시간엔 취미활동
퇴근 전 1시간이 피크타임
개인용무·명상·이직준비도

대한민국 직장인의 '가짜노동' 현실은 참담했다. 직장인들 스스로 '나는 월급 루팡(일은 안 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근로시간이 길건 짧건 마찬가지다. 평균 30%가 가짜노동 시간이다. 나머지 70%도 진짜노동 시간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근태 관리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리에 밀렸다. 성과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성과에 상관없이 받는 보수가 똑같다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낙오하지 않으려면 노동 개혁이 다른 어떤 개혁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9일 매일경제가 20~50대 직장인 7명의 평일 하루 일과를 추적한 결과 직장인들이 업무와 관련 없는 잡담, 웹 서핑, 개인 용무, 취미 활동 등에 쓰는 시간이 근무시간 중 평균 27%를 차지했다. 2023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 1872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505시간이 가짜노동인 셈이다. 총 근로시간에서 가짜노동을 뺀 1367시간으로 보면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최하위권으로 짧아진다. 가짜노동은 공기업·사기업 가리지 않았고, 20대 새내기 직장인과 50대 부장도 다르지 않았다. 남녀 차이도 없었다.

지방 중견기업 사무직 A씨는 평소 오전 8시 20분까지 출근해 9시까지 개인 정비, 업무 준비, 커피 타임 등으로 시간을 보낸 뒤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집중적으로 일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다. 그리고 2시 30분까지 오후 집중 업무를 한다. 오후 4시까지는 약간의 휴식과 이직 준비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5시 30분까지 업무에 집중한다. 10분간 눈치를 보며 퇴근 준비를 하다가 5시 40분 사무실 문을 나선다.

A씨는 "나도 이직 준비 등으로 하루에 1시간30분 정도 가짜노동 시간을 갖지만 차장 이상 선배들은 일하는 시간이 1시간30분 될까 싶다"며 "월급 도둑질을 하는 게 내 미래가 될까 두려워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5년 차 공기업 사무직 B씨는 하루 9시간 근무시간 중 가짜노동이 30분에 그쳤다. 다만 B씨는 "내 업무가 맞긴 하지만 쓸데없는 보고서를 만드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후배 직원들에 대해서는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유튜브를 봐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있어서 뭐라고 못 하니 하루에 1~2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직원이 수두룩하다"고 푸념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하는 20대 직장인 C씨는 하루 가짜노동 시간이 2시간10분이었다. C씨는 "외근을 마친 후 몰래 쇼핑을 하고 들어올 때도 있고, 자료 조사를 핑계로 웹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흔하다"고 고백했다. 경기도 소재 공기업 과장 D씨는 하루 8시간30분 일하면서 3시간55분이 가짜노동 시간에 해당됐다. 그는 스스로 "점심시간을 빼고 나면 제대로 일하는 건 2~3시간뿐"이라고 말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11시 20분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갈 때까지 실제 일한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은 주식 시황 체크, 웹 서핑, 커뮤니티 글 확인 등으로 보냈다.

D씨의 점심시간은 평균 1시간40분이다. 근로기준법 54조에 따르면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면 30분 이상, 8시간 이상 일하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보장받는다. 대다수 직장에서는 이 조항을 근거로 점심시간 1시간을 유급 휴게시간으로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D씨는 유급 점심 휴게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점심 시작 시간은 계속 빨라지는데 업무 복귀 시간은 오후 1시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으러 일찍 나간다고 딱히 지적하는 사람이나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직장인이 낮 12시까지 점심을 먹고 들어와 오후 1시까지 운동, 취미활동, 휴식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D씨의 가짜노동 시간에 점심시간은 빠져 있다.

서울 대기업 사무직 7년 차 30대 직장인 E씨는 흡연자다. 회사가 금연 빌딩이어서 흡연을 위해 오가는 시간까지 하루에 40분 이상을 소비한다. E씨의 가짜노동 피크타임은 퇴근을 준비하는 1시간이다. E씨는 "화장실·탕비실에 자주 간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며 "담배를 피우러 나가 약국이나 은행을 가고 개인 업무를 볼 때도 많다"고 했다.

대기업 본사에서 일하는 40대 차장 F씨는 "외근이 잦은 편이다. 2시간 외근을 나가면 1시간은 일하는 데 쓰고, 나머지 1시간은 카페에서 쉬거나 은행, 병원 등 개인 업무를 보는 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같은 기업 50대 고참 차장 G씨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 전에 항상 50분~1시간 정도 명상 시간을 갖는다. 그는 "업무는 대충 오후 5시 전에 마무리하고 퇴근 전에 눈을 잠깐 붙이거나 멍하게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지웅 기자 / 최예빈 기자 / 류영욱 기자 / 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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