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전설적 바리톤 피셔디스카우의 마지막 제자’,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의 수제자’. 클래식 음악 분야에선 널리 알려진 스승의 이름을 앞세워 이런 식의 ‘스승 마케팅’을 펼치곤 한다. 스승 덕 보는 제자들이다. 하지만 간혹 ‘잘 키운 제자’ 덕을 보는 스승들도 있다. 가르친 스승보다 제자가 더욱 이름이 알려진 경우다. 임윤찬을 키운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오는 7월 스위스의 알프스 산 중턱에서 열리는 베르비에 클래식 페스티벌에서 스승 손민수(49)와 제자 임윤찬(21)은 ‘따로 또 같이’ 무대에 오른다. 7월20일 손민수가 먼저 독주회를 열어 베토벤 마지막 소나타 3곡을 연주한다. 그는 2020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음반을 녹음한 바 있다. 주최 쪽도 ‘임윤찬의 스승’이라고 손민수를 소개한다. 몇 시간 뒤엔 제자 임윤찬이 같은 무대에 올라 바흐 골트베르크(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흘 뒤엔 두 사람이 각각 피아노에 앉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리사이틀’을 펼친다. 스승과 제자의 ‘합동 리사이틀’인 셈이다. 그에 앞서 손민수는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임윤찬은 요즘 ‘대세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29)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제자 덕을 본 스승’이라면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바얀(64)을 빼놓을 수 없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쇼팽 콩쿠르 3위 등 화려한 경력의 ‘대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34)를 그가 가르쳤다.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을 두 대의 피아노로 나란히 연주한 음반도 발매했다.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두 사람 역시 ‘따로 또 같이’ 무대에 선다. 스승 바바얀이 7월19일 독주회를 열고, 나흘 뒤엔 제자 트리포노프의 독주회가 이어진다. 그 사이 7월22일엔 두 사람이 버르토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협연하는데, 지휘자 역시 클라우스 메켈레다.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손민수-임윤찬 팀’과 ‘바바얀-트리포노프 팀’이 펼치는 ‘사제 연합팀 대결’을 방불케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제 관계지만, 스승의 예술적 유전자가 제자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기도 한다.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한 피아니스트 김도현(31)은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배운 스승 세르게이 바바얀의 음색을 빼쏘았다는 평을 듣는다. “연주자마다 결이라는 게 있다. 오래전에 김도현 연주를 듣고 바바얀의 정갈한 음색과 닮았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사제지간이었다.” 금호아트홀에서 오래 일했던 이지영 공연기획자의 경험담이다.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까지 스승을 닮기도 한다. 임윤찬은 “본인에게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나도 그렇게 바뀌었다”고 스승 손민수를 말한다. 손민수 역시 “윤찬이는 저와 성격이나 성향에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빼어난 제자를 두는 것도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다. 김대진(63)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유난히 ‘제자 복’이 많다. 손열음(39)과 김선욱(37), 문지영(30), 박재홍(26) 등 국제 콩쿠르를 휩쓴 피아니스트들을 제자로 ‘독점’했다. 김 총장은 이런 제자들과 한 대의 피아노로 연탄곡을 치거나, 듀오 리사이틀을 즐기곤 했는데, 그럴수록 ‘뛰어난 스승’이란 그의 브랜드 가치도 더욱 높아졌다.
스승은 때로 제자들이 넘어야 할 높은 산이다. 지난해 금호아트홀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은 영국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53)는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94)의 수제자로 통한다. 두 사람 모두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보다 오로지 음반과 공연으로 대결했다. 지적이고 사색적인 연주 스타일도 닮았다. 브렌델 같은 거목의 그늘에 있는 제자의 중압감이 오죽할까. 그렇지만 루이스는 스승이 평생 천착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파고들며 정공법을 택한다. 그 대신 스승과 접근법이 달랐다. 브렌델의 슈베르트가 서정적이라면, 루이스의 슈베르트는 저돌적일 정도로 거침이 없다.
최고의 스승은 제자가 자신의 어깨를 딛고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고 풀어주는 스승이 아닐까. 명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83)의 스승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가 이를 실천했다. “굴다는 2년 반 정도만 아르헤리치를 가르쳤는데, 자신 곁에 더 있으면 그녀의 연주가 자신과 비슷해질까 우려해서였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책 ‘피아니스트를 위하여’(북커스)에 나오는 얘기다. 제자로만 남으면, 스승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란 말이 있는데, 임윤찬과 트리포노프, 폴 루이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연주자들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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