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순씨네 새식당을 소개합니다 [임보 일기]

박임자 2025. 2. 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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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박새예요.

초록색으로 뒤덮인 옷을 입고 있고 눈 주위가 하얀 독특한 외모 덕분에 사람들이 금세 나를 알아볼 것 같지만, 나뭇잎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아서 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때부터 새싹이 나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해요.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우리 아파트에 사는 팔순의 맹순씨가 17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오더니 눈이 펑펑 오던 날부터 '새식당'을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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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아파트 주민이 새를 위해 만들어놓은 밥 자리를 찾은 동박새. 과일과 쌀이 인기 메뉴다. ⓒ박임자 제공

나는 동박새예요. 초록색으로 뒤덮인 옷을 입고 있고 눈 주위가 하얀 독특한 외모 덕분에 사람들이 금세 나를 알아볼 것 같지만, 나뭇잎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아서 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요. 외모가 워낙 독특하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싶어 안달이에요. 나를 만나기 위해 꽤 멀리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몰랐죠? 나는 아파트를 참 좋아해요.

아파트 정원에는 가을이면 홍시가 달리는 감나무가 있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수액도 나오고 작은 벌레도 많은 단풍나무가 없는 곳이 없어요. 봄이면 벚나무에 벌레가 많아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어떻게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새끼를 키우기에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다른 곳에서 둥지를 짓지만, 가을이 되면 나는 다시 아파트 단지로 돌아온답니다.

나는 지난해 여름에 태어났어요. 우리 새들은 태어나 둥지를 떠난 후 한두 달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답니다. 여름에 태어나 처음으로 맞는 겨울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우리들에게 정말 힘든 계절인 것 같아요. 추위야 깃털을 부풀리면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먹을 것을 찾는 일은 정말이지 힘들어요. 나무나 풀에 달려 있던 씨앗과 열매도 12월이 지나면 줄어들기 시작해서 3월쯤 되면 거의 떨어지고 보릿고개가 돼요. 그때부터 새싹이 나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해요. 그러다 보니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처음으로 맞이한 이번 겨울은 첫눈이 내리던 날부터 혹독했어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했고, 나무에 달려 있던 산수유를 비롯한 열매들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산수유 열매의 과즙은 겨울에 물을 찾기 힘들 때 먹으면 물 보충이 되어 그만한 먹이가 없는데 이렇게 우수수 떨어져버리다니! 맛있는 것이 있어도 겨우내 두고두고 먹어야 해서 아껴두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무에 달려 있을 때 실컷 먹는 건데 그랬어요.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하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우리 아파트에 사는 팔순의 맹순씨가 17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오더니 눈이 펑펑 오던 날부터 ‘새식당’을 열었어요. “작은 새들아, 이렇게 추운데 어디에서 먹이를 찾니?” 걱정하면서요.

새들에게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보릿고개’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박임자 제공

사과랑 귤도 매달아놓고, 비싼 홍시를 그릇에 담아 내놓기도 했어요. 맹순씨 먹기도 아까울 텐데 고마워요! 덕분에 한겨울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맛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맹순씨는 쌀과 해바라기씨를 통에 담아 걸어놓고, 물도 그릇에 담아 내놓았어요. 찬바람 부는 창문을 열면 추워서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고 하면서도 물이 얼면 하루에 몇 번이고 얼지 않은 물을 내주었지요.

저는 요즘 박새랑 쇠박새, 오목눈이들이랑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어요. 아무래도 같이 다니다 보면 천적이 나타났을 때 피하기도 쉽고 어디에 먹이가 많은지 정보도 알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내가 더 먹고 싶어도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다른 데로 옮겨 가면 나도 얼른 따라가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친구들과 다니는 게 든든하고 좋아서 겨울에 함께하고 있답니다. 오늘은 이 친구들에게 내가 알아놓은 맹순씨네 새식당을 소개해줘야겠어요.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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