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없는 국민연금 개혁, 공허한 논쟁의 쳇바퀴 [視리즈]

김정덕 기자 2025. 2. 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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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국민연금 공전의 기록 1편
지속가능성이 연금 개혁의 관건
1년 전 핵심 비껴간 TV 토론회
최근 국회에서도 소모적 논쟁만
모수개혁 하더라도 불신은 여전
국회 차원의 올바른 공론화 필요

최근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논의가 재개됐다. 지난 1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면서다. 하지만 여야는 이렇다 할 합의점 없이 공허한 논쟁만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진행한 대대적인 TV 토론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연금제도, 과연 개혁할 수 있을까. 視리즈 '국민연금 개혁, 공전의 기록' 1편이다.

국민 10명 중 3명은 폐지를 거론할 정도로 국민연금 제도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75.6%. 2023년 7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30대 11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국민연금 제도를 불신한다'고 답한 비율이다. 지난해 10월 연금개혁청년행동이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18~49세 10명 중 3명이 '국민연금 제도의 폐지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개혁 논의는 국민의 요구와 다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이하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진행할 때만 해도 국민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네차례의 TV 방송을 통해 이뤄진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이하 토론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대적으로 열린 토론회에 비해 도출된 결론은 단출했다. '500인의 시민대표단을 상대로 재정안정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과 소득보장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더니 시민대표단의 56.0%가 소득보장안을 택했다'는 게 끝이었다.

당시 더스쿠프는 이 토론회가 국민이 원하는 국민연금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토론회에선 국민의 불만을 해소할 만한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둘러싼 국민적 불만과 불안은 단순히 소득대체율 인상이나 적립금 고갈 이슈 때문에 커진 게 아니다.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제도를 만들어서 때만 되면 재발하는 '연금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없애 달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요구였다.

간단히 말해 기금 적립금 소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토론회에선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에만 초점을 맞췄다. 토론회의 결론이 간결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둘째, 깜깜이 토론회였다.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는 토론회에 참여한 '500명의 시민대표단'을 선발하는 과정이 적절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국민연금 전문가를 어떻게 정했고, 왜 모수개혁만 논의하는지 등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기금 적립금 소진(혹은 고갈)'이나 '소득대체율' '기금운용수익률' 등 핵심 단어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았다.[※참고: 더스쿠프 595호 '어차피 기금은 고갈 국민연금 개혁안에 숨은 오류들(2024년 4월 27일)'.]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당연히 공개 토론회의 결과를 토대로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연금개혁 추진계획(정부안ㆍ2024년 9월)'도 개혁의 핵심을 비껴갔다.

정부안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9%에서 13%로 인상(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 2028년까지 40%로 낮출 예정이던 명목소득대체율 42%로 유지, 4.5%로 추정된 장기(2023~2093년) 기금운용수익률 1%포인트 이상 향상, 인구수와 기대수명, 경제 상황 등에 연동한 '연금액 자동조정장치(사실상 연금액 자동삭감장치)' 도입을 위한 논의 시작, 법률에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 명문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기금 적립금 고갈 시기를 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방안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이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간 후엔 어땠을까. 사실 정부안이 발표된 이후 국회는 이렇다 할 논의를 하지 않았다.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탓에 토론의 장이 사라진 탓인데, 12ㆍ3 비상계엄이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면서 토론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공청회를 열면서 논의가 재개됐다. 문제는 어렵게 논의를 다시 시작했는데도 핵심 논의 내용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야가 내놓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모조리 모수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고, 구조개혁을 담은 개정안은 사실상 전무하다.

국민의힘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지만, 이는 국민이 진짜 원하는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제도'로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기금 적립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면서 재정안정안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보험은 가입한 국민의 노후를 조금이라도 보장해주기 위해서 마련한 제도인데 '노후보장'이라는 역할을 못한다면, 혹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편으로 인해 국민 간 보험료율과 연금액에 차등이 생긴다면 이런 국민연금 제도에 가입할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당초 정부안에서 소득대체율만 50%로 높이는 방안을 주장했다. 그러다 국민의힘이 44%를 제시하자 이 정도 선에서 모수개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구조개혁 논의를 나중으로 미뤄놓자는 건데, 그렇게 연기해온 탓에 '국민연금 제도의 불신'만 키웠다는 걸 간과한 주장이다.

여야가 충돌하는 건 또 있다. 국민의힘은 연금개혁특별위를 구성해서 연금개혁 문제를 다루자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야가 이렇게 갈등만 거듭해선 국민연금을 개혁할 수 없다.[※참고: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위해 이해관계자들의 공론화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구조개혁도 필요하다는 걸 감안하면 국민의힘 주장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논의가 재개됐지만,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실 정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국회의 역할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9월 '사회적 대화를 위한 연금개혁 공론화 기구의 필요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그간의 연금개혁 과정에서 연금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개혁을 성사시키기는 매우 어려웠다.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해관계자와 사회 각계의 의견을 공정하게 수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국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연금개혁의 방향을 충분히 논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국회에 공적인 상설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와 같은 일회성 토론회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론의 장에서 다뤄볼 만한 국민연금 개혁 주제들은 뭘까. 이 문제는 '국민연금 개혁, 공전의 기록 2편'에서 다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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