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가 발굴해 시장 외연 확대 기여

한겨레 2025. 2.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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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333333;">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span>
<span style="color: #333333;">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ㅣ 미술사가·시장 협업해 미술사 새롭게 집필하자</span>
서구미술 도입의 관점에서 서술된 우리 미술의 역사를 주체적 관점에서 새롭게 수정하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작가들의 가치 있는 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
서구미술 도입의 관점에서 서술된 우리 미술의 역사를 주체적 관점에서 새롭게 수정하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작가들의 가치 있는 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오광수의 ‘한국현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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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인 내게 미술에 관해 문의하는 내용의 상당수는 역사가 아닌 미술작품 구매에 관한 것이다. 고가의 미술작품을 구매하려는데 물을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번지수가 약간 어긋나더라도 그냥 ‘미술’을 아는 사람이니까 다급한 마음으로 내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작가와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설명은 실제 구매에 필요한 적정가격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다만 가치 있는 작품임에도 시장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고가 미술품은 ‘머니게임’ 영역

작가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5천만원에서 1억원 사이의 어느 금액을 넘어가면, 미술사가로서 내지는 미술이론 전문가로서 평가하는 작품의 가치만으로는 작품의 가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 고가의 영역은 이른바 ‘돈이 돈을 만드는’ 머니게임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론적·역사적 가치보다 시장의 변수가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오디오 마니아들이 고가의 오디오 장비를 구입할 때, 그들이 지불하는 금액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음질의 차이는 금액이 올라갈수록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작아진다. 오디오뿐이 아니다. 위스키, 와인 등 기호품도 마찬가지다. 미세한 차이를 감별할 정도의 예민한 분별력을 지닌 극소수 덕후가 경합하는 최상위 수준의 물건에서 작은 차이는 종종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따라서 사치품 중 가장 비싸다는 미술품 시장에서 그 대가는 쉽게 수억원, 수십억원대의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수 있다.

오디오든 와인이든 미술이든 이런 극상의 영역에서 작은 질적 차이를 감별하고 그것의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자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호도와 취향의 대상을 좋고 나쁜 정도에 따라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서열화하거나 수치화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게다가 이 고가의 영역에서 가격을 매기는 자는 사실상 전문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큰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금전적 능력과 소유욕을 지닌 구매자가 가격을 결정한다.

물론 전문가의 평가의견이 있겠지만, 그 의견의 권위와 신빙성은 구매자가 지출한 금액에 비례해 생기거나 커진다. 이때 전문가는 자신의 평가에 지불된 높은 가격과 그 가격을 지불한 컬렉터로부터 ‘최고’ 전문가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컬렉터는 거꾸로 ‘최고’ 전문가로부터 자신이 지불한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를 인정받는 공생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참여자가 경합하는 적당한 가격대 시장에서 전문가의 가치평가는 어느 정도 가격을 설명한다. 그러나 극소수의 재력가만이 참여하는 고가의 시장에서 전문가의 가치평가는 고작해야 시장가격을 사후적으로 인증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비싼 작품의 구매 여부를 고민하는 문의에 미술 전문가가 해줄 수 있는 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 규모의 자본력을 지닌 국제적인 대형갤러리들이 전속화가의 시장을 조성하고 방어하는 수억원대 이상의 미술품 시장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라 시장이 가격뿐만 아니라 가치도 결정한다. 이들이 고가의 가격을 매겨 특정 작가의 시장을 조성하면 시장의 거래금액이 커진다. 모인 돈은 흐르게 마련이어서 그 돈은 시장에서 미술계로 흘러 전시, 평론, 학술연구에 대한 수요를 일으킨다.

일단 글이 많아지면 이런저런 지면에 작가 이름이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인지도가 쌓이면 미술사의 한 귀퉁이에라도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미술사는 사실상 시장과 전문가가 공동으로 집필하는 셈이다.

이처럼 고가의 미술품 시장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제한적이지만, 거대자본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중저가 미술품 시장에서는 전문가의 역할이 훨씬 커진다. 유망한 신진 작가 발굴이나 중견 내지 원로 작가의 미술사적 자리매김, 그리고 저평가된 작가의 재평가와 같은 일들은 전문가의 작업에 자본이 후행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시장 전문가가 아닌 미술 전문가의 자문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통상 전시가격은 작가와 화랑이 정하지만, 유통시장 가격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정한다. 미술작품을 구매해봤다면 알겠지만, 미술작품은 사기도 어렵지만 팔기는 더 어렵다. 극소수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되팔면 산 가격의 십분의 일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이용하면 의외로 좋은 가격에 좋은 작품을 구할 수도 있다. 특히나 시장 참여자가 많지 않아 유행에 따라 시장의 쏠림이 심한 국내 미술시장에서는 좋은 눈만 가지고 있다면 가치 있는 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매할 기회가 종종 주어진다. 게다가 지금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우리 미술에 대한 재평가가 요구되는 변화의 시점이다.

한국 미술사 주체적 해석 필요

한국 역사 전반과 마찬가지로 한국 미술사도 식민지 시절 일본학자들에 의해 기술됐다. 한번 쓰인 역사를 수정하기란 쉽지 않아서 그간 수많은 지적에도 골격은 상당 부분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케이(K)-팝과 K-드라마에 이어 한국문학까지 본격적으로 세계화되는 지금, 서구미술 도입의 관점에서 서술된 우리 미술의 역사를 주체적 관점에서 새롭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미술사 서술의 수정이 요구된다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중요한 작가들의 가치 있는 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오늘날 미술사는 미술사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함께 쓴다. 따라서 미술사를 수정하고자 한다면, 시장에 이를 알려 시장이 반응하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미술사가는 중요한 작가를 발굴하면서 우리 미술사를 올바로 쓰고, 시장은 가치 있는 작품을 저평가된 값싼 가격에 구매해 시장의 외연을 키울 수 있도록 미술사가가 앞장서서 시장과의 공생관계를 열 필요가 있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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