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씩 사라져서 하는 일…독학자를 위해 징검돌 놓기 [.txt]

한겨레 2025. 2.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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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평원 독학학위검정실 김지원씨

일하는 사람의 초상

독학 학위 수여를 위한 과정 관할

출제-편집-시험-채점-성적 확정

떨어진 수험자가 울어도 단호하게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동지”

지난해 독학학위 취득 시험 안내 책자와 시험 문제. 김지원(가명)씨는 ‘독학학위제’가 제2 인생을 위한 토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김지원씨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얼마간 사라질 때가 있다. 보안이 필요한 일이라 바깥과 단절된 채 합숙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지극히 합법적인 일이라고 답하는데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인 얼굴로 더 설명해주길 원하는 이도 있다. 세상에서 나를 잠시 숨기고 하는 일은 ‘독학학위취득시험’ 출제와 관련 있다.

“독학…? 그게 뭔데요?”

“아, 대학교 검정고시라고 생각하면 돼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하 국평원) 독학학위제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독학학위제는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할 수’ 있고 ‘일과 학습의 병행이 가능하여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언제나,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한 평생학습시대의 자아실현을 위한 제도’다. 2025년 현재 총 11개 전공이 개설되어 있고, 1년에 4차례 시험(1과정 교양과정 인정시험, 2과정 전공기초과정 인정시험, 3과정 전공심화과정 인정시험, 4과정 학위취득 종합시험)을 실시한다. 4과정의 ‘성적 이의 신청’ 기간이던 지난해 12월 중순, 국평원 독학학위검정실에서 ‘출제관리 업무’와 보안 합숙으로 진행되는 ‘편집본부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는 김지원(가명)씨를 만나기로 했다. 첫 합숙을 마치던 날 보름 가까이 못 본 아이들에게 줄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던 그를 떠올리며 인터뷰 장소인 광화문으로 향했다.

교육학과 91학번이었던 그는 졸업 즈음 아이엠에프(IMF) 시대를 맞이했다. “취업이 쉽지 않기도 했고, 그보다 교생실습을 하면서 아이들, 청소년들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석사를 마치고 취직할 생각이었는데 아내가 아깝지 않으냐고 묻더라고요.” 아내의 응원은 그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미국에서 평생교육을 공부했어요. 제가 배운 평생교육은 주로 시민의식, 시민운동, 시민교육에 바탕을 둔 것인데요. 시민을 대상으로 어떻게 교육하고 방향을 잡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한국교육개발원의 평생교육센터와 학점은행센터, 한국방송통신대학의 독학학위검정센터를 통합해 만든 평생교육진흥원, 지금의 국평원에 입사했다. “2008년 3월에 개원했고 제가 9월 입사니까 초기부터 일한 거죠. 평생교육센터에서 근무하다가 다음 해에 독학 부서로 발령 났는데 그곳에서 좋은 실장님을 만났어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이셨어요.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는데 회귀본능이랄까요, 독학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독학학위제를 향한 애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가 궁금했다. “인적 구성이죠. 양질의 시험문항을 만들고자 참여한 교수님들과 편집위원들, 그리고 좋은 실장과 실원들까지,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거든요.”

독학학위취득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자의 목표가 학위 취득에 있다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행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김지원씨는 설명했다. 각 시험은 출제, 선제(출제된 문제 중 선택하기), 편집, 인쇄, 배포, 회수, 채점, 성적 확정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모든 일에 그의 시간이 머문다. 특히 ‘선제’부터 ‘인쇄’는 외부와의 접촉이 통제된 공간에서 합숙으로 진행된다(2025년부터는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 전문보안업체의 보안검색을 받고 전자기기와 서적을 제출해야 하며, 긴급 상황이 아니고서는 외부와의 연락은 제한된다. 긴급하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확인하는 일도 보안 담당자의 입회 아래서만 가능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미드저니에 “강을 건너지 못하는 캐주얼 복장을 한 사람을 위해 정장을 입은 다른 한 남자가 손을 내밀어 강을 건너도록 도와주는 장면을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다.

격리 절차를 마치면 시험지를 만드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배수로 출제된 문제 중 절반을 골라 검토 및 수정하고 선제된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국문 교열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시험지 체제에 맞게 편집하며 완성된 시험지를 인쇄소에 넘기고 필요에 따라 확대시험지나 점자시험지를 제작하기도 한다. 그는 이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관리한다.

“시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큰 흐름을 잡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하는 거죠.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오류를 발견했다면 서둘러 해결하고요. 이견이 있을 때 조율하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합숙에서 가장 주요한 일 중 하나는 시험지를 만드는 ‘편집’이에요. 그걸 담당하는 편집위원의 건강을 주시하는 것도 저희 일이죠.” 합숙 중에 코로나19나 독감 등에 걸리거나 아픈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럴 때도 일은 계속 해야 한다. 일정은 정해져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시험지는 나와야 하니까. 아픈 이의 몫을 나누어 일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이중의 격리’로 편집을 진행하기도 한다. 격리 공간에서 한번 더 격리를 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모여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한 차례 시험이 연기된 경우를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시험은 일정대로 실시되었다.

대학에 적을 둔 교수가 문제를 출제하고 선제한다면, 편집에 참여하는 인력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생이나 수료생, 대학 강사 등으로 구성된다. 전공과 가치관, 성격이 다양한 사람들을 이끌고 일하는 동안 그는 특히 처음 합류했거나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이들을, 그들의 일과 생활을 챙기려 노력한다. 어떤 작업이 힘든지 먼저 묻고 편집 시스템 사용을 도와주며 눈앞에 닥친 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편집위원을 격려하기도 한다.

인력과 일정이 여유롭지는 않기에 고강도의 노동이 이어지지만 편집위원들은 자기 몫의 시험지뿐 아니라 타인의 시험지도 함께 들여다본다. 연관이 있는 전공끼리 의견을 나누고 극과 극의 전공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살펴보며 혹시나 있을 오류를 찾아낸다. 행정학 전공자와 법학 전공자의 시선에서 행정법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19세기 영미소설 문제의 문항과 답항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기도 한다.

“자기 일이 끝났는데도 남아서 다른 전공 시험지를 들여다보세요. 길지 않은 시간에 동지애 같은 게 쌓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거죠. 모두가 함께 성장시킨 존재라 그런지 인쇄소에서 막 나온 시험지를 받으면 더 뿌듯해요. 편집위원들이 합숙 첫날 나 왜 또 들어왔지, 하세요. 첫날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같이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끼고, 힘든 건 잊고 좋았던 것만 기억하는 거죠. 인간에게는 기쁘고 즐거웠던 것을 오래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잖아요.”

최종 시험지 원안을 인쇄소로 보낸다고 해서 합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쇄소가 바삐 돌아가고 시험지가 각 고사장으로 보내지고 시험이 실시되고 끝날 때까지 합숙에 참여한 이들은 여전히 바깥과 차단된 채 지낸다. 완성된 시험지를 봤기 때문에 격리는 시험이 끝나야 해제된다. 편집위원들은 인쇄가 시작된 후 돌려받은 자신의 책(전자기기를 제외하고 오직 지류만 받을 수 있다)을 펼쳐 공부하기도 하고, 그간 쌓인 피로를 잠으로 풀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류로 가득한 시험지를 마주하거나 시험 당일 문제 오류를 알리는 전화를 받는 악몽을 꾸고 뛰쳐나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모여서 도란도란 시간을 보낸다. ‘기초 일본어 교실’ 같은 원데이 클래스가 열리는 때도 있다. 인쇄된 시험지를 보고 오류를 재차 확인하며 답안을 확정하는 것 역시 ‘인쇄’와 ‘배포’ 사이의 일이다.

시험지 너머에서 수험자를 마주하는 것도 김지원씨의 일에 포함된다. 지금은 콜센터가 있어 업무가 줄기는 했으나 초기에는 시험 접수부터 성적 이의 제기까지 다양한 연락을 직접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고 나이 제한이 없으니 연세가 있는 분들도 많이 도전하세요. 언젠가 60대 수험자가 한 과목 때문에 졸업을 못 하는데 방법이 없는지 전화로 하소연을 하셨어요. 저희 시험이 60점 이상이면 합격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안 됩니다, 뿐이에요. 이건 국가시험이고 공정해야 하니까요.” 동료들끼리 ‘러브레터’라고 부르는 재소자의 민원도 있다. “수험자 중에 재소자도 많아요. 그분들은 사서함을 통해 연락하세요. 주로 이번에 합격해야만 한다, 도와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 경어체로 적힌 편지예요. 답장을 쓰기도 하고 교도관을 통해 답변하기도 해요. 지금도 시험이나 성적 관련하여 중요한 답변은 저희가 할 일입니다.”

한때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쁜 남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수화기를 들면 너머에서 우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이번에 합격해야 계획대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는데 그만 삐끗해 버린 이들에게 그는 ‘안 됩니다’라는 단호한 말과 더불어 격려와 용기를 건넨다. “제가 길을 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동지임을 인지시키려 해요. 힘들겠지만 노력해 보자고요. 1년 후에 60대 수험자가 합격 소식을 전해주셨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 독학학위제를 통해 일하며 학위를 따고, 나중에 로스쿨에 진학한 수험자도 있었고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보람을 느끼죠.”

독학학위취득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줄어드는 추세다. “학령인구 감소도 이유 중 하나고, 4과정에만 있는 간호학의 경우는 많은 대학이 3년제에서 4년제로 바뀐 게 반영된 결과일 테고요. 근데 변화는 늘 있었어요. 독학학위제에는 폐지되는 전공도, 신설되는 전공도 있어요. 시대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거죠. 예전에 문항개발은 프린트를 하고 등기로 주고받으며 진행됐지만 제가 문항개발 담당자였을 때 지금 구축된 온라인 시스템을 추진했어요.” 기술 발전에 따라 시스템이 바뀔지라도 지향하는 바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평균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독학학위제가 제2의 인생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다음 단계로 가는 징검다리 같다고 할까요. 한국에서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미국에서는 성인교육이라는 말도 써요. 성인도 평생 지속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학위 취득을 위한 제도적 대안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방송대와 학점은행제가 유명한데 독학학위제도 그중 하나고요. 평생교육을 공부했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입사해서 평생교육 제도인 독학사를 담당하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합숙을 마칠 때마다 케이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말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아이들이 또 언제 케이크 먹을 수 있느냐고, 아빠 또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자라는 동안 그를 거쳐 간 시험지를 떠올리자 단단하고 납작한 돌이 그려졌다. ‘꿈꾸고 노력하는 자들이여, 함께 갑시다’의 마음이 담긴 징검돌이었다. 어쩌면 김지원씨의 일은 누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징검돌을 놓아 다리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이나 그림 따위에 나타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뿐 아니라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 역시 초상이라면 그가 끈기 있게 놓은 징검돌 역시 ‘일하는 사람의 초상’일 것이다.

지영 장편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어제를 기억하는 여덟 개의 방식’,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있다. 5·18 문학상 신인상,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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