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0도에도 10시간 근무...비닐하우스에 사는 26세 아빠의 꿈 [최주연의 스포 주의]
단열부실, 화재위험 있는 20만원짜리 불법가건축 기숙사서 거주
고향에 있는 아내와 딸 생각하며 '역기러기 생활' 버틴다
편집자주
이야기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스포)’라 합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지도 모를 결정적 이미지를 말머리 삼아 먼저 보여드릴까 합니다. 무슨 사연일지 추측하면서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비하인드가 펼쳐집니다.


경기 포천의 한 청경채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자잇(가명·26)은 올겨울 핫팩에 기대 연명하고 있다. 겨울 평균 기온이 20~30도인 캄보디아에 살던 자잇은 지난해 1월 고용노동부 알선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자잇보다 먼저 한국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친구들이 날씨에 대해 경고하긴 했지만 체감기온 영하 20도의 한파는 상상보다 더 혹독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5일, 자잇의 하루는 어김없이 5평 남짓한 컨테이너 가건물 기숙사에서 시작됐다.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이불 안과 달리 바닥은 냉골이다. 장판 밑 보일러는 고장 난 지 꽤 됐지만 기숙사를 내준 농장주는 별말이 없다. 화재에 취약한 가건물 컨테이너 건물에 둔 전기난로만 아슬아슬하게 열을 내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두려운 시간은 밤늦게 화장실을 갈 때다.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걸어 나와 살을 에는 바람을 뚫고 걸어 나와야 간이로 만들어 놓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전등이 없는 화장실에서 추위에 서두르다 발을 잘못 디디면 낭패를 본다. 열악한 주거환경이지만 농장주는 기숙사를 제공하는 대가로 월급의 10%인 20만 원을 떼간다.
자잇의 공식적인 퇴근시간은 5시다. 기숙사에 돌아와 생선이나 고기를 고향식으로 흉내 내 조리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 살짜리 딸과 통화를 마칠 때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힘들었던 하루가 모두 보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긴 이르다. 저녁 7시쯤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비닐하우스 단지를 돌아보며 온습도계를 확인한다. '비공식 업무'까지 합하면 하루 노동시간은 10시간에 달한다.


자잇이 신혼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가족과의 나은 미래를 위해서다. 캄보디아에서의 농업 종사 경험을 살려 한국의 한 청경채 농장에 취직했다. 자잇은 200만 원의 월급 중 기숙사비 20만 원과 생활비를 제외하고 절반 이상의 금액을 매달 가족에게 송금하는 '역기러기 아빠' 생활 중이다.
자잇은 최대한 자금을 많이 모으기 위해 10년간 한국 체류를 마음먹었다. 단순노무분야 취업비자인 E-9 비자는 4년 10개월이지만 연장 시 최대 10년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다만 캄보디아로 돌아갔을 때 중학생이 된 딸과 서먹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국 정부가 허락만 해준다면 한국으로 데려와 같이 살고 싶어요."
자잇처럼 단순 노무 분야 취업비자인 E-9으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2024년 3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3만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30대 이하로, 짧게는 약 4~10년의 기간 동안 최대한 돈을 많이 모아 금의환향하고자 하는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 '18~39세', '가족 동반 불가'라는 비자 규정에 매여있는 이들은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유예한 채 젊음을 노동에 바치고 있다.
장시간 노동, 비닐하우스 기숙사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공론화 이후에도 여전하다. 2020년 12월 영하 20도의 한파 중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던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이 사망한 이후에 이주노동자에게 가설건축물 숙소제공이 금지됐으나 여전히 편법으로 운영되는 사례를 포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며 관련 실태를 파악해온 김달성 목사는 고용노동부 고용허가제가 근본적인 문제라 지적한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사람이 아닌 노동력으로만 보기에 정부가 불법 기숙사도 눈감아주고 가족 동반이 안 되는 비자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 알선 규모 확대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전에 처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juic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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