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속 꿀벌은 축구공이 된다[벌통을 열다]
지난 1월26일 대전(大田). 양봉장이 있는 산으로 가는 길섶마다 흰 논이 펼쳐졌다. 눈이 쌓였고 이따금 베어낸 벼 밑동이 눈 위로 솟았다. 날카로웠고 벌침이 생각났다. 다행히 겨울에는 벌에 쏘일 걱정을 안 해도 됐다. 영상 15도 이하에선 벌들이 벌통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다. 오후 2시 영상 8도로 따듯했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는 벌에게 좋지 않다. 양봉인이 되면 날씨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낀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벌을 걱정했다.
벌들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걸음마다 이어졌다. 두 달 만에 양봉장 가는 길이었다. 가장 추울 때 벌통 속 얼어 죽은 벌들을 치우고 관리하지 못했다. 탄핵 정국 속에서 서울에서 대전까지 오갈 시간이 없었다. 2년 전 서양꿀벌로 양봉을 시작할 때 여러 차례 벌들이 떼로 죽는 것을 봤다. 여름 말벌이 쳐들어와서. 무리하게 벌통을 늘리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꿀벌은 축산법상 가축이다. 양봉인 도움이 더해질 때 더 오래 살 수 있다.
산길은 녹은 눈으로 진흙탕이 됐다. 부츠 밑창에 개흙이 쩍쩍 달라붙을 때마다 걸음이 더 무거웠다. 산 중턱 벌통 보였다. 지난해 가을 월동준비를 위해 벌을 끌어 모았다. 벌통 2개였지만 1개로 합쳤다. 벌들이 많지 않아 그랬다. 보통 양봉인들이 판단하는 ‘벌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넘길 수 있는 기준’은 벌통 속 소비(벌집 기초에 꿀벌이 밀랍으로 만든 벌집) 6개에 꿀벌들이 가득 붙어있는 것이다. 벌이 많아야 서로 체열로 추위를 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벌통 속 벌은 소비 3개에 그쳤다. 벌통 1개뿐인데 모두 죽으면 끝장이다.
벌통에 달린 말벌방지망을 걷어냈다. 벌통 입구에 철사를 넣어 긁어냈다. 죽은 벌들이 쏟아졌다. 죽은 등검은말벌 3마리가 나왔다. 말벌과 싸우다 죽은 꿀벌들도 함께 떨어졌다. 흰 눈 위로 부서진 날개와 가슴, 배가 떨어졌다. 1㎝도 안 되는 철망 틈으로도 등검은말벌이 비집고 들어갔다. 말벌도 살기 위해 그랬겠지만 원망스럽다. 지난해 가을에 벌들이 줄어든 이유도 여름철 말벌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다. 겨울을 나기 위해선 이미 여름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신경 쓰느냐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을 못했다.
아. 수많은 움직임이 있다. 벌들의 웅성거림은 내겐 외마디가 됐다. 벌통 문을 열자 벌떼가 동그랗게 모였다. 벌들이 공처럼 모인 현상을 봉구(蜂毬)라고 한다. 찌그러진 축구공 같은 벌들이 날개를 진동시켜 벌통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꿀벌 줄무늬가 흔들렸다. 공이 굴러갔다. 여왕벌은 알을 낳지 않아 황금빛 배가 홀쭉했다. 크기가 작아져 일벌과 구분이 어려웠다. 그 주위로 일벌 200여 마리가 몰렸다.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벌들이 적었다. 그래도 어쨌든 살았다.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경계태세를 취한 벌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살았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살았다라고 외쳤는데 살면서 이 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낸 게 오랜만이었다. 살려달라는 말을 자주하는 인생은 불행할 것 같지만 살았다고 기뻐하는 경험은 좋은 것만 같았다. 괜히 몇 번 더 중얼거렸다. 눈이 쌓여 많은 것들이 숨어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벌들도 그러했다.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농업은 한번에가 없고 벼락치기가 없다. 미리 미리. 한 발 앞서 생각해야 할 따름이다. 입춘 지나 날씨가 다시 추웠다. 오늘 “푹푹 눈이 나리”고 또 벌 생각했다. 실은 다시 걱정했다.
국내에서 겨울철 벌들이 죽는 ‘월동폐사’ 문제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양봉농가 관리 미흡과 기후위기를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겨울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과 하강은 되레 떼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앞서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겨울철 상황별 월동 봉군 집중관리 요령’을 마련해 농가에 배포했다. 요령에는 “월동을 위한 최소 봉군은 소비 3개이상, 벌 착봉 100%로 구성”이라고 적혔다. 대전에 둔 벌통은 간신히 최소 기준을 맞춘 셈이다.
특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기후변화가 꿀벌의 겨울나기에 영향을 준다. 「꿀벌의 월동 폐사와 실종에 대한 기온 변동성의 영향」(2022)에 따르면 2021년 전남 영암군에서 이상저온과 이상고온이 꿀벌들 집단폐사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됐다. 늦가을 태어난 겨울벌들이 에너지를 겨울철 따듯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쓰지 못하고 육아에 쓰게 돼 수명이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벌들은 늦가을 10~14도로 3일 이상 내려갈 때 산란을 멈추고 봉구를 형성해 월동에 들어간다. 반면 낮 시간 온도가 12도 이상이 3일 넘게 계속되면 여왕벌의 산란이 시작된다. 겨울벌은 생리적으로 여름벌과 달리 수명이 150일 정도로 길며 육아를 하지 않는다. 겨울 고온 현상으로 육아를 시작하면 체내 호르몬 구성, 생리가 달라진다. 수명이 40여 일로 줄어드는 것이다. 갑자기 또 기온이 급감하면 봉구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추위를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벌들은 기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취약한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2023년~2024년 동절기 동안 월동폐사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진 않았다고 봤다. 2024년~2025년 동절기 월동폐사 현상은 완연한 봄 이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지난해 양봉 작황에 대해 “2024년 초 월동 직후에는 꿀벌응애 피해 없이 꿀벌 개체 수가 빠르게 증식했다. 큰 피해가 없었다”며 “농가에 배포한 겨울철 봉군 요령에는 한파 대비 및 이상고온 시 대응 방안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이상기후에 따른 대처를 고민하고 있다. 월동 봉군 집중관리 요령에도 한파, 이상고온 등 기후별 대응법을 안내하고 있다. 설명절 따듯한 겨울이 이어지다 최근처럼 갑자기 추위가 닥쳤을 때는 전기가온판 사용을 권하고 있다. 전기가온판은 꿀벌을 위한 난방매트다. 농진청 관계자는 “월동을 하면서 벌 개체의 30%는 자연스럽게 생명을 다한다”며 “겨울은 오히려 전기가온판 등을 이용해 관리를 할 수 있지만 여름철 이상고온은 벌이 견딜 수 있는 더위를 넘어버릴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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