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완료된 노트르담, '웅장한 울림' 되찾아
2019년 4월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길에 휩싸였다. 빠른 진압 덕에 더 큰 화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웅장한 첨탑과 성당의 지붕 구조물이 손상됐다. 그 후 5년간의 복원 작업 끝에 2024년 12월 대성당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복원된 건 단순히 건물의 외관만이 아니었다.
회중석과 측랑을 울리던 소리까지 예전 그대로였다. 웅장한 오르간 선율과 합창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었을까.
● 운 좋게 남아있던 소리 풍경의 단서들
노트르담 대성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중세 고딕 건축의 진수로 손꼽힌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에 공사를 시작해 1345년에 완성됐다. 무려 862년의 역사를 품은 걸작이다.
높이 96m로 높게 솟은 중앙 첨탑은 고딕 양식 특유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높이 35m의 아치형 천장은 들어서는 순간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공중부벽은 두껍고 튼튼한 벽을 떠받치는 동시에 고딕 건축이 가진 정교한 기술과 우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 대성당의 또 다른 매력은 정교한 장미창문(rose window)이다. 세 개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내부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며 방문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덕분에 살면서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건축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브라이언 카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사운드스페이스 연구팀장은 대성당의 '소리 풍경(soundscape)'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 덧붙인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진정한 매력이라는 것이다. 높은 천장과 끝없이 이어진 복도에서 풍성하게 울려 펴지는 성가대의 노래와 오르간의 웅장한 화음 소리. 불길은 건물은 물론 그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이를 되살려낼 실마리가 카츠 팀장의 손에 남아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다.
"2015년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가대 음향을 재현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향 특성을 측정했습니다. 그 경험이 이번 복구 작업에 중요한 단서가 됐죠."
카츠 팀장은 과학동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향 특성 연구는 원래 복원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카츠 연구팀은 지난 2015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의 연주를 가상에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디지털 프로젝트 '노트르담의 과거에는 귀가 있다(The Past Has Ears at Notre-Dame)'를 위해 노트르담 대성당의 음향적 특징을 분석했다. (hal-01789760)
소리는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울리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좁은 샤워실에서 노래하는 것과 뻥 뚫린 산 정상에서 노래하는 것. 소리를 내는 사람은 같아도 주변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때문에 가상에서 음향을 복원하기 위해선 공간의 어떤 특징이 어떤 음향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5년 당시 카츠 팀장은 대성당 내부의 벽과 천장, 돌기둥에서 소리가 어떻게 반사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인 스윕' 방식을 활용했다. 사인 스윕은 일반적으로 20Hz(헤르츠)에서 2만Hz(20kHz)까지의 여러 주파수의 소리를 차례로 공간에 방출하고 그 소리가 반사되고 흡수되는 과정을 녹음해 원래 방출된 소리와 비교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반사음을 모든 방향에서 균등하게 포착하는 '바이노럴 마이크'와 입사음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엠비소닉 마이크' 등 다양한 고급 마이크가 사용됐다. 카츠 팀장은 녹음된 신호와 방출된 원래 신호를 비교해 대성당 내부에서의 잔향 시간, 소리의 반사 패턴, 주파수별 흡수와 반사 특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잔향 시간은 약 6초 정도로 일반적인 실내 공간에 비해 상당히 긴 것을 확인했다. 카츠 팀장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특별한 공명감이 관찰된 이유는 내부공간이 거대한 데다 반사율이 높은 석조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조 중에서도 '트리포리움'과 '트랜셉트' 구조가 길고 독특한 지연소리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트리포리움은 대성당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깊은 발코니로 고딕 스타일의 성당에만 있는 특별한 구조물이다.
이 공간은 다른 벽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소리가 이 공간에서 한참 머문 후 다시 퍼져나간다. 마찬가지로 대성당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는 큰 개방된 십자형 공간인 트랜셉트에서도 깊은 부분에서 반사된 소리가 원래 소리보다 지연돼 도달하면서 잔향 시간에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메아리를 떠올리면 쉽다. 산 정상에서 내지른 소리는 가까운 산에 부딪혀 돌아오는 소리, 먼 산에 반사돼 돌아오는 소리가 시간차로 들린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스러운 울림은 트리포리움과 트랜셉트의 특별한 구조 덕분인 셈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충분한 스피커가 없지만 내부 어느 곳에서도 성가대의 노랫소리와 감미로운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카츠 팀장은 이 현상이 "곳곳에 배치된 기둥과 아치 구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기둥과 아치는 소리를 특정 방향으로 집중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여러 방향으로 퍼뜨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합창석에서 성가대가 노래하거나 오르간을 연주하면 이때 기둥은 소리가 벽에 부딪히기 전에 청중에게 소리를 반사해 특정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곳곳의 아치 구조는 위쪽으로 퍼져나간 소리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넓은 대성당 공간 전체에 소리가 울리게 만든다.
● 과학으로 다시 만든 웅장한 소리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의 목표는 '과거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 '음향적으로 과거와 동일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카츠 팀장은 지난 5년간 진행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의 목표를 설명했다. 2015년 대성당 음향 연구는 과학을 통해 과거를 보존하려는 작업이었다면 화재 이후의 복원은 과거의 소리를 되살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카츠 팀장은 "음향적으로 똑같은 경험을 제공하려면 단순히 건물 구조와 재료를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 소리가 왜 그곳에서 그런 방식으로 울렸는지 명확한 이유를 밝혀내야 했기 때문이다.
화재 이후 대성당의 음향은 크게 달라졌다. 2020년 화재 피해를 정리한 후 측정한 소리에서는 잔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천장에 생긴 큰 구멍을 통해 소리가 외부로 빠져나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리를 흡수하거나 반사해 주던 의자, 조각품, 성화와 같은 내부 장식품도 화재로 사라지거나 화재 수습 과정에서 치워지며 음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장식품들은 소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복도에 카펫을 까느냐 마느냐가 분명한 차이를 만들 정도다. 심지어 사람도 영향을 미친다. 음향적 관점에서 사람은 그 어떤 가구보다 소리를 잘 흡수하는 '흡음재'다. 사람이 가득 찬 성당과 텅 빈 성당에서의 소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트르담의 소리 풍경을 복원하기 위해 카츠 팀장은 화재 전의 음향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음향 모델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구조적 설계와 재료 배치가 음향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했다.
이 과정에서 소리를 광선처럼 계산해 대성당 내부에서 소리가 어떻게 반사되고 퍼지는지를 예측하는 도구 '캐츠 어쿠스틱(CATTAcoustic)'이 사용됐다. 캐츠 어쿠스틱은 잔향 시간과 소리의 분포를 정밀하게 분석해 대성당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캐츠 어쿠스틱은 내부 장식품의 배치뿐 아니라 재료 특성도 변수로 설정해 음향을 예측할 수 있다. 카츠 팀장은 "음향을 완벽히 복원하려면 중세 시대에 사용된 재료의 특성을 되찾는 것이 필수였다"며 "프랑스 전역의 박물관과 가구 보관소를 샅샅이 뒤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구팀은 석재의 표면 처리 방식이 잔향 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설계에 반영했고 천장 복구작업에서도 천장의 형태와 두께를 세밀하게 조정해 음향적으로 과거와 동일한 결과를 얻어냈다. 구조와 재료만 복구해선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복원된 노트르담 대성당의 소리요? 얼마나 똑같은지 한번 들려드리고 싶네요." 복원 결과를 묻는 질문에 카츠 팀장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유사할 것"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답했다. 먼저 시뮬레이션 결괏값이 이를 증명한다.
카츠 팀장은 프레드릭 빌리에 프랑스 소르본대 중세 음악학 교수 등과 연구팀을 꾸려 복원된 대성당 내부에서 합창단이 노래하는 소리 오르간 연주 소리를 시뮬레이션하고 소리의 잔향, 반사 패턴, 음색 등이 과거의 실제 소리와 얼마나 유사한지를 확인했다. (doi: 10.30965/9783846769133_007)
그 결과 잔향 시간과 음향 명료도(소리의 각 단어, 음, 혹은 음악적 요소가 얼마나 분명하게 들리고 이해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 값이 모든 주파수 대역에서 실제 측정값과 1JND 이내로 일치했다. 1JND란 사람이 소리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를 나타내는 단위로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유사하다는 의미다.
복원된 소리가 실제 청중의 귀에도 비슷하게 들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음향 청취 실험도 진행했다. 실험은 복원 후 대성당에서 녹음한 실제 소리와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 소리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음향학이나 음악에 경험이 있는 전문가 21명이 실험에 참여한 결과 대부분의 참가자가 복원된 대성당의 소리가 화재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카츠 팀장은 이번 연구가 단순히 과거의 음향을 재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은 단순한 건축물의 재건이 아닙니다. 이번 작업은 862년의 세월 동안 대성당의 소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대성당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음향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를 복원할 수 있었죠.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2025년 당시의 노트르담 대성당 음향이 어땠는지 전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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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래 기자 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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