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김동준 신부 "더 열심히 사는 농인에게서 용기 얻어"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저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사시는 농인(聾人)들이 많이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분들로부터 많은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를 딛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동준(44) 갈리스토 신부에게 다른 농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가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오히려 그들로부터 힘을 받았다고 답했다.
지난 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로부터 성품성사(聖品聖事)를 받고 사제가 된 김 신부는 서품에 앞서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끝까지 저를 믿고 기다려주시며 함께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농인 사제는 극히 드물다. 2007년 서품받은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가 있고, 아시아로 시야를 넓히면 싱가포르와 인도에 농인 신부가 한 명씩 있는 정도로 알고 있다고 김 신부는 전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모태 신앙인이지만 김 신부가 성직자의 길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3세 때 약물 부작용으로 청력을 상실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강론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그는 사춘기 시절 미사 전례에 참석하는 것이 시간 낭비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한동안 '냉담자'로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한 농인 신자의 소개로 수어 통역이 있는 성당을 방문하면서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만들어진다.
수어 통역 봉사자는 미사의 모든 음성을 수어로 전했고 난생처음으로 강론 내용을 이해하게 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통역을 거쳐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사제의 강론을 이해하고 묵상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기쁨이었습니다."
미사는 고단한 일상에서 큰 힘이 됐으며 김 신부는 새로운 열망이 솟는 것을 느끼게 됐다.
"농인 신자들이 더 이상 통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어 원어민'인 농인 사제를 통해 수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모든 성사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갈망이 점차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교황이 공인한 한 수도회로부터 2010년 입회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생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입회 며칠 전에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수어를 전혀 모르는 청인(농인이 아닌 사람) 형제들과 함께 평생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매우 컸습니다. 결국 입회 포기를 하면서 사제가 되는 것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입회를 포기했던 수도회의 신부로부터 연락받고 얘기를 나눈 것을 계기로 다시 입회 허가를 받고 2011년에 수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청인 중심으로 이뤄진 공동체 생활이 쉽지는 않았고 홀로 농인이라는 점에서 오는 외로움도 컸다. 흔들릴 때마다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그의 곁에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이들이 있었다.
"동료 수도자 한 명은 저를 위해 수어를 독학하여 결국 수어 통역을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학교에서 공부할 당시 한 교수님께서는 별도로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며 도움을 주셨습니다."
김 신부는 3세 때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애화학교에 입학하여 약 3년간 유치부 과정을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구화(口話)나 독순술을 익혀 청인과 대화할 때는 대체로 통역 없이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일대일 대화 상황에서는 상대의 입 모양을 봐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숫자 '일'(1), '이'(2), '칠'(7)처럼 입술 모양이 비슷한 음은 입 모양만으로 정확하게 식별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는 '농인'이라는 표현이 '신체적 결함이 있는 장애인'이라기보다는 '수어라는 언어와 농문화를 향유하는 언어적 소수자'라는 의미를 부각한 용어라고 소개했다.
한국수어(한국수화언어)는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서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로 규정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수도회 입회 전 한국농아인협회 인권센터와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그는 당시 경험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글을 배우지 못한 한 고령의 농인이 성경을 가져와 수어로 번역해 읽어달라고 요청한 뒤 눈을 반짝이며 내용에 집중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김 신부는 2022년 9월 수도회를 퇴회하고 이듬해 3월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했다. 작년 2월 사제보다 낮은 단계인 부제(副祭)품을 받았으며 성직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지 15년 만에 마침내 신부가 됐다.
그는 "저는 '청각장애'라는 어려움을 지녔지만, 따지고 보면 사제 양성 과정을 걷는 모두가 각자 나름의 고유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며 "저를 기꺼이 사제로 양성시켜주고 품어주신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에도 큰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세상을 향한 사랑을 놓치지 않은 예수님의 모습을 늘 기억하고 닮는 사제로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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