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히고 부서진 존재인 인도 불가촉천민의 가혹한 삶
이규희 2025. 2. 8. 06:01
박사와 성자/ 아룬다티 로이/ 서정 옮김/ 소명출판/ 1만9000원
인도 사회에는 전통으로 고착화한 가문의 직업과 신분이 있다. 직업군이 족벌화해 수천 개 카스트(계급)로 존재하는데, 그 카스트 족벌을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불가촉천민으로 구분한다. 산업체와 언론사 소유·운영부터 고위 공무원 자리, 선출직 공무원과 사법부 인원 구성에 이르기까지 카스트에 따른 기회의 불균형이 엄존하고, 특히 불가촉천민이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은 수치로 증명된다.
‘박사와 성자’는 1997년 데뷔작 ‘작은 것들의 신’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인도의 카스트, 인종에 대해 다룬 에세이다. 로이가 겨냥하는 건 다름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1869∼1948)다. 로이에 따르면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 일원으로 머무르던 시절부터 인도의 ‘성자’로 신격화되기까지, 인종차별과 카스트주의의 수호자로 군림하며 이를 자신의 정치 기반 중 하나로 삼았다.

인도에서 불가촉전민이 압도적으로 많이 분포하던 직업은 청소부다. 이들은 머리에 바가지를 이고 오물통에 맨몸으로 들어가 배설물을 퍼 올린다. 로이에 따르면 간디는 그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사랑하는 법, 유전된 직업이 주는 기쁨 이상을 절대로 열망하지 않는 법을 설교했다. 로이는 간디의 이런 청소부 ‘일’ 예찬을 비꼰다. “이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그런 소란을 피우지 않고 자신의 뒷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로이가 간디의 대립항에 놓는 인물은 인도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B R 암베드카르(1891∼1956) 박사다. 불가촉천민 출신인 그는 예외적으로 가촉민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기회를 얻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불가촉천민제 철폐운동에 몸을 던져 대중운동을 지도했다. 간디와 달리, 불가촉천민이 스스로 자기 신분 집단을 대표하는 정치력을 갖추고 법제화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사와 성자’는 ‘카스트의 소멸’ 입문서로 쓰인 글이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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