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계엄 호수 위 달그림자다?

오이석 기자 2025. 2. 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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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제5차 탄핵심판 변론기일에서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수사와 재판, 탄핵심판에 대해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 대한 소추대리인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증인신문이 모두 끝난 뒤 발언 내용입니다.

그는 이 말에 앞서 "실제 정치인들을 체포했다든지 누굴 끌어냈다든지 뭐 어떤 그런 비위 내지 이런 일들이 실제 발생했고 또는 현실적으로 발생할 일을 할 만한 가능성이 굉장히 높을 때 어떤 경위로 이렇게 된 건지 누가 지시를 했고 보통 수사나 재판에서 얘기되는데"라고 설명하며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JTBC 팩트체크팀이 12.3 계엄 상황이 윤 대통령의 말처럼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였는지, 계엄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팩트체크했습니다.

① 아무 일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쫓는다'는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요.

정확히 같은 표현을 찾진 못했습니다.

다만 일본 드라마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 드라마 중 판사의 대사에서 ″검찰측이 제시하는 증거는 자백을 포함해, 어느 것도 신빙성이 부족하고 이 사건에서 검찰측이 주장한대로 사건의 배경을 조립하려고 한 것은, 마치 물 속에 달그림자를 건져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출처:일본 NHK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 캡처)
지난해 일본의 한 방송사가 방영한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 미부치요시코를 모델로 한 법조드라마의 한 장면에서입니다.

드라마에서 판사는 "검찰 측이 주장한대로 사건의 배경을 조립하려고 한 것은, 마치 물 속에 달그림자를 건져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며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비판합니다.

실제로 1930년대에 일본에서 있었던 이른바 테이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재무공무원과 은행의 유착 의혹에서 출발해 무려 16명을 재판에 넘긴 일본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수사였습니다.

사건의 결과는 모두 무죄.

판결문을 1937년 발행된 일본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37년 12월 17일 테이진 사건 판결에 대한 아사히 신문 보도 내용 (출처: 고베대학 디지털 도서관/아사히신문 1937.12.17)
판결문엔 해당 표현이 없고, 검찰이 기소한 것처럼 범죄의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는 표현 정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주장처럼 비상계엄 선포가 '경고'라거나 탄핵과 내란 혐의가 실체가 없는 일들을 조합해 만들었다는 주장이 사실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 포고령 1호 전문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12.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선포 20분 뒤 박안수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도 언론을 통해 공표됐습니다.

경찰이 국회 경내 출입문을 봉쇄했으며,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안 운동장을 통해 진입했습니다.

개인 소총과 각종 장구를 휴대한 상태였습니다.

일부는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청사 안까지 침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국회로 향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계엄군 일부 병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했으며, 직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6일 공개했다. 〈출처:연합뉴스/국회행정안전위원회〉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고, 국회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이 경찰에 항의했습니다.

경내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출동한 계엄군 차량이 시민들에 막혔습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국회는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국회에 진입했던 계엄군이 국회 밖으로 철수합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해제하겠다고 밝힙니다.

시민들도, 국회도 모두 놀라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 모든 장면이 지난해 12월 3일과 4일 새벽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됐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② 정치인 체포, 의원 끌어낼 가능성 없었다?


윤 대통령은 실제 체포했다든지, 누굴 끌어냈다든지 실제 발생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발생할 일을 할 만한 가능성이 높았을 때 누가 지시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도 없었기 때문에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에서 체포 및 해제 결의 방해 지시를 묻고 답하는 게 허상을 좇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 말처럼 체포하거나 누군갈 끌어낸 일이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거나, 없었다는 말은 어떨까요.

# 국회의원 끌어낼 가능성?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있다. 〈출처:연합뉴스〉
12월 3일 밤 계엄이 선포된 직후 경찰과 국회경비대가 국회 외곽을 통제했습니다.

또 고도로 훈련된 특수전사령부 산하 707특임단과 수방사 요원들이 국회 장악을 위해 출동했습니다.

그들은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보다 인원이 적었지만 대치 중에 유리창을 깨고 청사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국회 보호, 시민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요원을 빼라는 지시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과 자신들의 지시에 대해 군 간부들이 너무 과하게 준비한 것이란 주장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국회에서 열린 4일 국정조사와 6일 헌재에서 열린 탄핵 심판 6차 변론 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윤 대통령이 직접 '의원들을 끌어내란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도 검찰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4명이 들어가서 1명씩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또 포고령 1항에 따르면 해제 의결을 위해 국회에 모인 의원들은 모두 계엄군의 체포 또는 해산 대상입니다.

군보다 먼저 국회 안팎에 도착한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국회를 계엄군과 경찰이 통제했을 겁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진 못했지만, 끌어낼 가능성이 없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 정치인 등 체포 가능성?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조지호 경찰청장 등에게 '특정 명단'에 대해 위치추적을 요청했습니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은 윤 대통령에게서 '싹 다 잡아들여라'는 전화를 받고, 이후 여 사령관에게서 잡아들여야 할 명단을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여 사령관이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여 사령관은 '특정 명단' 위치추적 요청을 인정했습니다.

국정조사와 검찰 경찰 조사에선 방첩사와 정보사, 경찰, 국방부 조사본부 요원 등이 체포조로 움직였거나, 지원 가능성에 대한 조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명단에 따른 체포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체포 시도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조치들이 시민들의 저지와 국회의 해제 의결 때문에 실패로 끝났을 뿐입니다.
계엄군들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③ (추가 체크) 이진우 '대통령 끌어내란 지시' 진술 바꿨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4일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 측 변호사가 "해제 의결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없었죠?"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 문답을 두고 윤 대통령 측과 일각에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한 지시가 없었다거나, 이 전 사령관이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진술조서의 내용에서 이 전 사령관의 답변을 보면 이건 질문의 방식을 통해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낸 겁니다.

소추 대리인단에서 공개한 이 전 사령관의 진술조서에서 검사는 "군검사의 피의자 신문 때 대통령에게서 3번의 전화 받았다고 진술했고, 당시 통화한 내용을 다시 진술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이 전 사령관이 3번에 걸친 통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두 번째 통화 내용은 "대통령이 물어보고, 4명이 들어가면 1명씩"으로 시작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제시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검찰 진술조서 일부 캡쳐 〈출처:헌법재판소 변론 영상〉
해당 조서엔 이 전 사령관의 지장(간인)이 찍혀 있습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끌어내라'는 말이 있었는지를 묻지 않고 "해제 의결을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끌어내라'는 행위가 아니라 목적에 대해 밝혔는지를 물어본 겁니다.

따라서 진술을 바꿨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자료조사 및 취재지원 : 박진희 조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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