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 ⑫] 부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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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을 위한 특강의 마무리 슬라이드 제목은 '살면서 지키면 좋을 것들'이었다.
부모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그 말에 대한 공감도가 높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부모에게 한동안 기대는 것도 그 본질은 떠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시대 586세대가 '슬픈 세대'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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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마음 약한 효자·효녀
강박적 효심에 묶여 있으면
자신을 위한 삶 선택 어려워
스스로를 가두는 일 없기를
신입사원을 위한 특강의 마무리 슬라이드 제목은 '살면서 지키면 좋을 것들'이었다. "매일 팔굽혀펴기 스무 개 이상 하기. 매주 책 한 권 읽기. 반려인간,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술은 조금만. 월급의 20%는 자신만을 위해 쓰기."
마지막 항목에서 목소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월급만 모아서는 집 못 산다, 그러니 안 되는 일에 목숨 걸지 말라. 대신 최신 휴대폰을 사든, 맛집 순례를 다니든, 한 달에 한 번쯤 친구들에게 한턱 내든, 자신을 위해 '쏘라'.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자신을 신입사원 중 한 명의 어머니라 했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왜 애들한테 '쏘라'고 했느냐. 티끌 모아 태산인데, 알 만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 자기 자식 허파에 바람을 넣었느냐. 부모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그 말에 대한 공감도가 높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강의 현장에서의 반응이 가장 컸던 말은 "최선을 다해, 가능한 한 오래도록, 부모 등에 기대어 살라"였는데.

"자학적이고 강박적인 효심"이라고도 했다-는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어렵다.
부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반백 년 넘게 살다 보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후손에게 유전자를 남기고 자신의 껍데기를 죽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나, 부화한 새끼를 멀리 보내는 데 힘을 다 써 그 자리에서 죽고 마는 문어를 보자. 사람이라고 뭐가 그리 다를까.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파베세는 시 '선조들'에서 "여자들은 우리의 핏속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넣어주지만 / 자신은 자기의 작품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 그렇게 태어난 우리는 홀로 살아나간다"고 읊었다.
부모에게 한동안 기대는 것도 그 본질은 떠나기 위한 것이다. 하루 이틀, 한두 해 길고 짧음은 큰 문제가 아니다. 떠남은 필연이다.
미국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가 죽고 아이는 오래도록 울었다. 그리고 자기 삶의 길을 간다. 아버지를 잊지 않으면 된다고 다짐하면서. 소년이 만난 누군가는 말한다. "이런 일은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시대 586세대가 '슬픈 세대'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이라 한다. 봉양과 부양이라는 두 가지 의무를 떠안고도 요즘 부모의 금쪽같은 사랑도, 예전 자식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존경도 얻지 못한다는 거다. 그런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켜주던 분들이 계셨고 다른 방법으로 나를 기억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스물일곱 젊음이라면 당장의 제약이나 미래의 속박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기를.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기를.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놀고 싶으면 놀기를. 부디 그 모든 일에 좋은 때를 놓치지 말기를. 그리고 그 모든 자유로운 결정에 부모가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부모의 등은 튼튼하다.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는다. 부모로 살아보니 그 정도는 알겠다.
[김영태 아케이드 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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