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尹의 궤변과 시장에서 일어난 일 [추적+]

강서구 기자 2025. 2. 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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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12·3 비상계엄 後 한국경제
계엄이 한국 경제에 남긴 상처
계엄으로 경제 침체 가속화
환율 치솟자 소비자물가 들썩
대외신인도 경고음 갈수록 커져

# "계엄이 신속하게 해제됐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5차 변론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정말 그럴까. 비상계엄 후 우리나라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 그렇지 않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깊어졌고, 시장에 날아온 '계엄 부메랑'은 날카로웠다. 과연 대통령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걸까,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더스쿠프가 '비상계엄 後' 일어난 명백한 일들을 분석했다.

지난 6일 탄핵 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 뉴시스]

■ 비상계엄 後 환율과 증시 = 먼저 원·달러 환율부터 보자. 2024년 12월 2일 달러당 1406.5원을 기록했던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3일 밤 11시께 1439.0원으로 치솟았고, 이후 1444.7원까지 상승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원 달러 환율이 27%가량 급등한 셈이다.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를 웃돈 건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고, 금융시장이 들썩였던 2022년 10월 이후 2년 만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설 때마다 원 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는 걸 감안하면 비상계엄의 충격파를 가늠할 수 있다.

환율만이 아니다. 투자시장도 출렁였다. 12월 3일 전 거래일 대비 1.86% 상승하며 2500.10포인트를 넘어섰던 코스피지수는 곧장 하락세로 돌아섰다. 4일 1.44%(종가 24 64.00포인트) 하락한 것을 시작으로 4거래일 연속 떨어지며 9일 2360.58포인트로 주저앉았다.

비상계엄 선포가 키운 정치적 불확실성에 코스피지수가 5.5% 하락한 것이다. 중소형 종목이 몰려있는 코스닥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690.80포인트에서 627.01포인트로 9.23% 하락했다.

이 기간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은 2390조5162억원(코스피 2046조2610억원+코스닥 344조2552억원)에서 2246조1769억원(코스피 1933조1619억원+코스닥 313조150억원)으로 144조3393억원 쪼그라들었다. '초헌법적' 비상계엄으로 코스피 2위 종목인 SK하이닉스(2월 5일 시총 144조7268억원)의 시총과 맞먹는 돈이 증발한 셈이다.

■ 비상계엄 後 성장률과 물가 = 비상계엄의 여파가 짧게 영향을 미치고 사라진 것도 아니다. 비상계엄이 내란 사태와 탄핵정국으로 확산하면서 한국 경제는 정치적 불확실성 앞에 떨어야 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이 1월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우리나라 GDP는 전기 대비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은의 전망치인 0.5% 성장을 크게 밑돌았다.

한은은 경제상황을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한 심리 악화로 소비·건설투자 중심으로 2024년, 2025년 모두 지난 전망치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의 성장경로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의 완화 시기, 추경 등 경제정책 추진 여부와 속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비상계엄의 파장은 여전하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롤러코스터를 타던 원·달러 환율은 2024년 12월 27일 1482.6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넘은 건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15년 만이었다. 2025년에 접어들면서 소폭 하락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440원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12·3 비상계엄 후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를 웃돈 기간은 5일 기준 27일이나 됐다(한은 주간 종가 기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기록한 20일을 훌쩍 뛰어넘는 기간이다.

12·3 비상계엄이 끌어올린 환율은 안정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지수도 오름세로 돌려놨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2024년 8월 2.0% 이후 최고치다. 9월부터 1%대를 이어갔던 소비물가 상승률은 5개월 만에 2%대로 올라섰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을 자극한 결과였다. 실제로 휘발유(9.2%), 경유(5.7%), 도시가스(6.9%), 지역난방비(9.8%) 등의 가격이 뛰어올랐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매서운 한파에도 마음 놓고 난방하는 것마저 힘들게 만들었다는 거다.

■ 비상계엄 後 소비자·기업 심리 = 물가만 출렁인 것도 아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소비자심리지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한은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2024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월(100.7)보다 12.5포인트 하락한 88.2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90을 밑돈 건 2022년 11월(86.6) 이후 2년 1개월 만이었다.

2025년 1월 91.2로 소폭 회복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여전히 기준치 100 아래에 머물러 있어서다. 소비자들의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둡다는 거다.[※참고: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경제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많다는 걸 뜻한다. 100보다 낮은 경우엔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기업의 경기 전망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년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4.6으로 12월 BSI(97.3)보다 12.7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팬데믹이 글로벌 경제를 흔든 2020년 4월(25.1포인트 하락) 이후 최대 낙폭이었다. BSI는 기준치 100보다 낮을수록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한은의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4년 11월 90을 웃돌았던 기업심리지수(CBSI)는 12월 87.3으로 떨어졌고, 2025년 1월에도 85.9을 기록했다. 2024년 9월 91.6이었던 기업심리지수가 10월 92.5, 11월 91.8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비상계엄 사태가 일으킨 정치적 불확실성이 기업심리지수의 회복세에 제동을 걸었다고 봐야 한다.

■ 비상계엄 後 위기의 대외신인도 = 이뿐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악화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 "한국의 신용등급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로벌 3대 신평사 중 한곳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월 16일 "최근의 정치적 혼란이 부동산시장 심리와 거래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더불어 대출 수요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신인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도 있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무디스는 "계엄은 단기에 그쳤지만 높은 불확실성과 입법부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며 "통화 재정 정책을 포함한 다른 기관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지만 경제 활동 교란의 장기화, 소비 기업 심리 악화는 신용등급에 부정적(credit negative)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참고: 물론 피치(Fitch)는 지난 7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을 제시해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수개월 간 지속될 수 있다"며 "이런 교착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정책결정 효율성‧경제성과‧재정건전성 등이 악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신용등급 하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의 대외신인도가 악화하는 것만큼 나쁜 변수는 없다. 그 여파를 간단하게 몇개만 살펴보자.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금 회수에 나설 수 있다. 돈이 빠지면 원화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급등한다. 그러면 수입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불어닥친다.

그렇다고 한은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동성을 풀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인플레'를 자극한다.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금리를 끌어올리면 시장이 위축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말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우리나라를 아직 표적으로 삼진 않았지만, 환율은 연일 출렁이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상황이 2024년 11월 한은이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놓은 비관론인 '시나리오2'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당시 한은은 글로벌 무역갈등이 격화할 경우를 한국 경제의 2025년 GDP 성장률이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이 최근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1.7% 하향 조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이 1.4~1.5%(시나리오2 적용)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안동현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도 멈추지 않고 있어 2025년 한국 경제가 어떤 흐름을 보일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비상계엄 혐의를 두고 "호수 위에 떠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계엄 당일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한번 더 강조한 거다.

하지만 호수 위에 떠있는 건 실체 없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GDP 성장률, 원 달러 환율, 증시 등 눈에 보이는 '지표'를 흔들었다. '초헌법적' 비상계엄이 남긴 명백한 상처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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