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태원 참사' 막을 수 있을까…군중 움직임 확인하는 기술

박정연 기자 2025. 2. 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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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린 '산 페르민 축제' 현장에 몰린 인파.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 군중 밀집 사고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인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정 밀도를 초과하는 순간 군중은 개별적인 행동보다 전체적인 흐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 군중의 움직임은 예상 가능한 물리적 패턴을 따른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패턴을 미리 감지하고 대비한다면 대규모 인파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니스 바르톨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원과 앙투안 토르도 독일 부퍼탈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5000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군중에서 특정한 집단적 움직임 패턴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6일 발표했다. 연구진은 군중 밀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인파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이며 특정한 패턴을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연구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린 '산 페르민 축제'의 군중을 대상으로 4년간 진행됐다.

● 1㎡당 9명 넘으면 하나의 '유체'처럼 움직여

연구팀은 광장에 두 곳의 관측 지점에 카메라를 설치해 1000㎡의 구역 내 군중의 밀도 변화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축제 시작 1시간 전 군중 밀도는 1㎡당 2명 수준이었으나 축제 진행 중 1㎡당 6명까지 증가했다. 최대 1㎡당 9명까지 밀집한 경우도 관찰됐다.

1㎡당 9명을 초과하는 밀도에 도달하면 군중은 약 18~20초 동안 하나의 유체처럼 진동하는 독특한 움직임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를 '밀집 군중의 집단적 움직임 현상'으로 정의하며 군중이 외부의 지시나 압력 없이도 특정한 방식으로 일정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발생해 21명이 숨진 '러브 퍼레이드 참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당시 군중 밀도가 1㎡당 8명 이상이 됐을 때 산 페르민 축제에서 관찰된 것과 같은 움직임 패턴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일정 밀도 이상에서는 군중이 물리적 압박을 받으며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균형을 잃거나 압력 차이가 생기면서 연쇄적인 쓰러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규모 인파가 모인 자리에서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충돌을 피하려는 행동을 토대로 '사회적 패턴'을 보인다. 연구팀은 군중의 움직임에 작용하는 물리적 힘이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사회적 패턴'보다 강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밀도가 일정 수준으로 높아지면 사회적 패턴은 사라지고 물리적인 법칙의 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밀착될 경우 개개인이 속도를 조절하거나 회피하는 행동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좁은 공간에 갑작스럽게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일어나는 물리 현상으로는 앞서 '군중 난류'란 개념이 학계에 발표된 바 있다. 혼잡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각기 다른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서 보행의 흐름이 혼란스러워지고 사람들 간의 연쇄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에 휩쓸린 사람들은 곧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 2012년 키이스 스틸 영국 서퍽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당 4~5명이 밀집하면 군중난류로 인한 혼란상태가 벌어질 위험이 높다.

● 패턴 감지해 이동 경로 분석 연구도 활발

군중 밀집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군중의 위험한 밀집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한 군중 밀도에 따른 이동 경로를 분석하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폐쇄회로(CC)TV와 드론 영상을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일본 도쿄대에선 지하철역과 대형 경기장의 특정 구역에서 병목 현상을 방지하고 군중을 안전하게 유도하기 위한 모니터링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군중 분석 시스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는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접속 정보와 공간정보를 기반으로 인파 밀집 위험도를 예측하기 위한 '인파관리 시스템'을 내놓았다. AI영상분석 전문기업 인텔리빅스와 경성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등의 기관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은 CCTV, 드론, 음성 정보를 기반으로 군중난류 위험 상황을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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