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사면초가’ 정부정책 역량은 ‘물음표’

한겨레 2025. 2.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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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환율이다.

환율은 국가 통화의 가치다.

전세계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달러지수)가 107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53.5%로 미국 144.2%, 일본 254%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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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경제의 속살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2024년 12월 소비심리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악화했다. 2024년 12월24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이 썰렁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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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경기가 언제는 좋았겠냐만, 2025년은 특히 우려스럽다. 국내 소비심리가 매우 안 좋은데다 그나마 수출이라도 좋으면 간접적으로 내수 경기를 뒷받침할 텐데 그마저 전망이 좋지 않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긴 하겠지만 치솟은 환율은 금리 인하폭을 제한한다. 기업도 가계도 돈 쓸 여력이 없는데, 보완을 해줘야 할 정부의 경제정책 역량은 심히 의심스럽다.

한국은행이 2024년 12월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88.4포인트로 전월(100.7) 대비 12.3포인트나 떨어졌다. 2024년에는 연중으로 소비자심리지수가 100포인트 내외에서 움직였다. 전월 대비 많이 오르면 2.7포인트(7월), 많이 내리면 –2.8포인트(8월) 정도의 변동 폭을 보였다. 그런데 12월에는 무려 12.3포인트가 하락했다. 국가적 사태인 비상계엄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생활형편전망(-2.1), 가계수입전망(-2.5), 소비지출전망(-2.4), 경기전망(-2.2) 등 구성 지수 전반이 어둡다.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다.

늘어나는 채무 조정 신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저신용자 층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4년 11월까지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신청 인원은 17만9310명이다. 대출을 못 갚아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채무를 감면해달라고 요구한 사람이 1년 전 수준을 넘어섰다.

채무조정 신청자는 2022년 이전만 해도 12~13만 명 수준이었는데 2023년 18만 명대로 늘어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자영업자 채무조정 신청은 2만6267건으로 2024년 11월 기준으로도 전년 1년 신청자(2만5024건)보다 많다. 규모가 더 큰 법인도 마찬가지다. 법원에 접수된 파산 건수는 1745건으로, 역대 최다였던 2023년의 1657건 기록을 넘었다.

서민 경제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뭐 하나 녹록지 않은 게 없다. 한국 정부가 전망한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8%다. 2024년 2.1%에 비해 0.3%포인트 낮다. 한국 정부의 전망치는 국제통화기금(2%), 한국개발연구원(2%), 경제협력개발기구(2.1%), 한국은행(1.9%)보다 낮다.

통상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다른 예측 기관에 비해 높은 경향이 있다. 일단 정부는 국가 경제성장의 주체로 성장 ‘목표’가 반영된다. 국민에게 그나마 경제가 긍정적일 거라는 희망을 줌으로써 경제성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또 정부는 예산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효과에 대한 기대치도 반영한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 전망이 낮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2024년 연말을 지나며 경제 여건이 확연하게 악화했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먼저 발표한 다른 기관에 비해 정부 예측치가 낮아진 측면이 있다”며 “다른 기관들도 이후 발표할 전망치는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수출이다. 2024년 수출 증가율은 8.2%다. 수출액은 6863억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전 최대 실적은 2022년 6836억원인데, 이를 2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한국의 전세계 수출 순위도 8위에서 6위로 두 단계나 상승했다.

수입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국제 유가가 안정된 덕분에 전체 수입은 1.6% 감소했다.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었고 역대 최대 무역 흑자(621억달러)를 기록했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선박, 자동차 등이 호조를 보였고 새롭게 떠오르는 바이오헬스, 농수산식품, 화장품 등도 큰 폭으로 늘었다. 하지만 2025년 수출 증가율 전망은 1.5%에 불과하다.

내수의 큰 축은 건설이다. 건설 경기 호황은 주로 부동산 가격 상승과 함께 오기 때문에 서민들 입장에서 건설 경기 호황이 마냥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건설 경기는 서민 경제에 직결되는 내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건물을 지을 때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각종 소재 등이 대규모로 투입된다. 이는 기본이다.

통상 우리는 이사할 때 규모 있는 소비를 한다. 가전제품, 가구는 이사할 때 주로 바꾼다. 인테리어도 새로 하고 이삿짐센터도 부른다. 정부가 경기가 안 좋을 때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건 단순히 집 가진 사람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내수의 기둥 건설업도 암울

안타깝게도 2025년은 건설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택의 매매가도 비싼데, 원가 자체가 워낙 올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는 2024년 11월 130.26이다. 2020년 9월 100을 넘긴 이후 30%나 올랐다. 사람들은 집 살 여력이 없는데 집 만드는 비용 자체가 올라갔다. 짓겠다는 사람도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5년 건설투자가 1.4% 줄 것으로 예측했다.

경기가 안 좋으면 금리라도 낮춰주면 좋을 텐데, 여기는 환율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 한다. ‘2025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에서 “물가상승률이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으니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우리 경제 체력에는 더 내리는 것이 맞다고 한국은행은 인식한다.

경제성장률, 내수 경기, 환율, 금리, 부채 등 모든 상황이 서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능력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1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5년 경제 분야 주요 현안 해법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환율이다. 환율은 국가 통화의 가치다. 한국이 이자를 많이 주면 외국인은 한국 돈을 선호하고 원화의 가치는 올라간다. 금리를 내리면 그만큼 원화의 가치가 하락한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에 1450원을 넘나드는 시대다. 2008년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환율이다.

일시적인 위기라면 어떻게든 극복할 궁리라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원화 약세의 상당 부분은 달러 강세에 기인한다. 전세계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달러지수)가 107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한국이 특별히 안 좋아서 원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 달러가 너무나 강해서 원화가 약해진 것이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은 오히려 유리하다. 국외에 같은 가격에 물건을 팔아도 훨씬 더 높은 매출을 낼 수 있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 물건의 가격은 더 싸진다. 문제는 또다시 서민들이다. 예전에는 1달러짜리 물건을 1200원에 사던 것을 이제는 1400원을 줘야 한다. 요즘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어보면 생각보다 기름값이 비싸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국제 유가는 리터당 70달러 수준으로 안정돼 있다. 기름값이 비싸진 게 아니라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이 와중에 금리를 내리면 원화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다. 국내 경제만 생각하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맞지만 환율까지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머리도 복잡해진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금리를 내리면 이자는 덜 내겠지만 물가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은 더 낮아질 수 있다.

경제는 누군가 써야 돌아간다. 아무도 돈을 안 쓰면 경제는 더욱 둔화한다. 그런데 돈을 쓸 주체가 없다. 경제의 3주체는 기업, 가계, 정부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270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 101.4%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부채비율은 2023년 122.3%로 치솟았다. 코로나19로 금리를 급격하게 낮췄을 때 기업들은 많은 빚을 내 투자를 했다. 이후 물가가 상승했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늘어난 부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빚을 갚으며 근근이 버텨가고 있다.

정부, 정교한 재정 정책 펼쳐야

한국 가계부채가 많은 건 세상이 다 안다. 2024년 3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913조8천억원으로 3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기업과 가계가 빚에 억눌려 돈 쓸 여력이 없으면 남은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은 53.5%로 미국 144.2%, 일본 254%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비교국이 기축통화국이라 대단히 낮은 편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가계와 기업에 비하면 그나마 여력이 있다. 이럴 때 정부는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국제 신인도를 유지하면서도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는 정교한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

경제성장률, 내수 경기, 환율, 금리, 부채 등 모든 상황이 서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이럴 때 그나마 방패막이가 돼줘야 할 주체인 정부는 운전대를 꽉 잡고 운전하고 있을까? 운전을 잘해야겠다는 의지와 역량을 단단히 갖추고 있을까? 경제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 능력이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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