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유럽' 참여하려면 '성평등 계획' 내라?

이채린 기자 2025. 2.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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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요구에 연구자 지원 나선 WISET·한국젠더혁신센터
과학자들이 EU가 지원하는 호라이즌 유럽 연구비를 따려면 사업신청서를 낼 때 '성평등 계획(GEP)'과 '성별 특성 고려 요건'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이 올해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참여한다. 과학자들이 EU가 지원하는 호라이즌 유럽 연구비를 따려면 사업신청서를 낼 때 '성평등 계획(GEP)'과 '성별 특성 고려 요건'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한국에는 다소 낯선 개념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과학자들이 각 계획을 원활하게 세울 수 있도록 활발히 준비 중이다. 

WISET은 2월 중 호라이즌 유럽 신청 과학자들을 위해 성평등 계획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연구기관 및 대학용 2종류의 가이드라인이 배포된다. 

성평등계획이란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팀이 속한 조직(대학, 기관 등)이 성평등 촉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황과 계획이다. 

성평등계획은 4가지 필수 요건을 지켜야 한다. 조직의 최고 경영진이 서명한 계획이 공식 문서 형태로 기관 홈페이지에 게재돼야 한다. 성평등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할 계획인지, 성평등 관련 데이터, 기관 구성원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 및 훈련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사업신청서에 적어야 한다. 

성평등 관련 데이터는 연구자가 속한 조직의 '과제책임자 성별 현황', '육아휴직자 성별 복귀율', '남여 보직자 비율', '성별 임금격차', '육아휴직자 대상 별도 인사규정 보유' 등을 가리킨다. 

성평등계획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는 권지혜 WISET 정책연구센터장은 "국내 연구 조직은 이미 성평등 관련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데이터가 산재돼 있어 어디서 어떤 데이터를 골라 사업신청서에 써야 하는지 몰라 국내 연구자들이 애를 먹을 수 있다"면서 "가이드라인에 포한된 성평등계획 샘플을 참고해 연구자들이 성평등계획을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평등계획은 연 1회 이상 모니터링이 실시되어야 하고 결과를 보고하고 개선방안을 공개해야 한다. 호라이즌 유럽 사업 신청이 통과된 뒤에 성평등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적발되면 연구를 이어갈 수 없다. 

EU가 R&D 사업신청서에 성평등 계획을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권 센터장은 "연구 혁신을 도와 연구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서다"라면서 "선진국에서는 연구팀이 성별, 인종, 출신 등 배경이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훌륭한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양성이 연구 혁신을 가져오고 연구의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평등 계획이 조직과 관련된 요건이면 성별 특성 고려는 각 연구팀이 준수해야 할 요건이다. 연구를 진행할 때 성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성별 고려는 연구개발에서 성별 편향성 문제가 불거졌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중요하게 보는 개념이다. 특정 성별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연구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한계를 갖게 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참가자 중 대부분이 여성인 약효 임상 시험은 성공적으로 완수되더라도 남성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연구 선진국들은 이미 의생명분야를 비롯한 R&D에서 성별 특성 반영을 의무화하고 성별 요소를 고려한 혁신 과제와 연구를 장려하고 있다. 호라이즌 유럽이 사업신청서에 성별 고려 요건을 요구하는 이유다. 

성별을 고려하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호라이즌 유럽 사업신청서에 성별 편향이 일어나지 않도록 연구 방법론을 구성하고, 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물실험을 할 때 골고루 성별이 포함되도록 연구를 계획했는지 임상시험 참가자의 남녀 비율을 비슷하게 맞췄는지다. 연구가 여성을 더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모든 성별 특성이 고르게 반영됐는지 본다는 것이다. 

한국젠더혁신센터가 국내 과학자들이 성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 계획을 짜도록 도울 예정이다. 한국젠더혁신센터는 현재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 45개를 분석해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 요건 사례를 갖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사례를 따라 사업신청서를 쓸 수 있도록 한국젠더혁신센터는 멘토링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한국젠더혁신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 성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도록 안내한다. 

이혜숙 한국젠더혁신센터 소장은 "모든 성별의 사람이 낸 세금으로 과학 R&D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R&D 성과가 성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려면 반드시 성별 특성을 고려해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한국에서 과학 연구개발에 성별 특성을 반영하도록 권장하는 내용의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2021년 통과됐지만 연구자 자율에 맡기고 있어 현장에서 잘 적용되긴 어렵다"면서 "호라이즌 유럽을 계기로 국내 연구자들이 성별 특성 고려 연구가 선진국에서는 의무화 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더욱 인식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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