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정으로 간 한국 ‘고아 비즈니스’ [.txt]
생후 15일 아기 둘러싼 국제 소송전
국제 입양 역사와 실태 따갑게 성찰
2013년 1월11일(현지시각) 미국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이 1면에 한 한국 아기의 사진을 실었다. 아기의 입양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머리기사로 썼다. 신문은 이틀간 연속 보도를 내보내며 “태어나자마자 미국에 입양돼 7개월 동안 시카고 가정에서 자란 에스케이(SK·아기 이름 이니셜)가 해외 입양 분쟁에 휩싸여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질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방송사 에이비시(ABC)와 엔비시(NBC) 등 현지 언론들이 법원으로 몰려들었다. 한국 매체들도 보도를 시작했다.
‘사건’은 2012년 6월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비롯됐다(정확하게는 ‘파악’됐다). 입국 심사를 담당하던 국토안보부 직원이 49살 미국 여성 루셀(가명)로부터 SK의 여권을 받아 살폈다. 태어난 지 15일밖에 안 된 갓난아기였다. 보호자 미동반 입국이었고 비자도 없었다. 경위를 묻는 직원에게 루셀은 아기 친모가 손으로 쓴 입양 동의서를 내밀며 자신이 입양할 아이라고 주장했다. 인신매매 가능성을 의심한 직원은 국경보호국에 전화해 지원을 요청했다. ‘SK 케이스’의 출발이었다. 한국인 아기의 입양을 둘러싸고 미국인과 미국 당국, 한국 정부까지 낀 ‘전대미문의 소송전’으로 확대될 이 사건은 한국 국제 입양의 부끄러운 진실이 미국 법정에서 폭로되는 계기가 된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SK 케이스에 끌려 들어가 분쟁의 ‘이해관계자’가 된 당시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현재 국경너머인권 대표)이 사건의 시작과 끝, 그 너머를 생동감 있게 재구성한 르포르타주다.
SK가 낯선 미국 여성의 손에 들려 한국을 빠져나가는 모든 과정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루셀은 ‘만 45살 이상은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을 피해 사적 입양을 시도했다. 그 시도 전엔 브로커 역할을 한 한인 목사가 있었고, 친부모의 각서만 받으면 입양이 가능하다고 법률 자문한 한국인 변호사가 있었다. 루셀로부터 돈을 받고 친필 각서를 쓰게 한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 원장이 있었고,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무사 통과한 한국의 출입국 시스템이 있었다. 무엇보다 민간 ‘거래’로 이뤄져 온 한국 국제 입양의 역사가 구멍의 ‘배후’에 있었다.
루셀 부부는 SK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입양 전문가들이 제시해준 길을 따랐을 뿐이라며 일리노이 주법원에 후견권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법원에도 아동 신병 반환을 청구했다. ‘이민’이 뜨거운 이슈인 미국에서 2012년 대선과 맞물리며 국무부가 개입했다. 한국 정부에도 재판 참여를 요청했다.
이때부터 책은 SK를 어떻게든 자신들의 아이로 만들려는 부부와, 한국으로 송환하려는 미국, 다시 데려오려는 한국 사이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법정 드라마가 된다. 저자가 사태를 파악하고 보건복지부 담당 국장과 장관에게 보고하는 장면, 재판 참여를 준비하며 방관하는 관계 부처 공무원들과 갈등하는 장면, 움직이지 않는 한국 공무원들을 움직이기 위해 미국의 ‘윗선’을 움직이는 장면, 힐러리 클린턴 장관과 청와대가 챙기는 사건이 되면서 ‘판’이 커지는 장면 등은 한편의 속도 빠른 영화처럼 읽힌다. 그리고 마침내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연방법원 재판장의 이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당신 나라에는 사적 입양이 없나요?”
그 순간 증인석에서 “몸의 세포가 일제히 깨어나 위기 상황을 감지”한 저자처럼 독자들도 “진실의 순간에 도달”했음을 직감한다. 아동 입양은 법원 판결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국제 기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지만 한국은 민간 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긴 채 ‘고아로 돈을 번다’는 비난을 자초(2013년에야 가정법원이 입양을 결정하도록 법 개정)해왔다. “(그 한국이) 이 아기 한 명을 데려가겠다고 미국 연방법원까지 오는 쇼를 하다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판사의 눈은 묻고 있었다. 그날 미국 법정에 소환된 것은 루셀의 불법이 아니라 그 불법에 길을 열어준 한국의 입양제도였다.
루셀은 재력가였다. “창의적인” 소송들을 잇따라 제기하며 끝까지 맞섰다. 언론과 인터뷰하며 “미디어 전쟁”도 벌였다. 루셀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활용했으나 SK는 결국 국내로 송환(새 부모를 만나 성장)됐고 ‘한국 정부가 되찾은 유일한 국제 입양아’가 됐다. 사건은 종결됐지만 저자가 기록한 사건의 파동은 지금도 격렬하다. 아기에 대한 루셀의 깊은 집착과 한국에 대한 불신의 이유가 그의 법정 발언을 통해 드러난다. 루셀 자신이 한국에서 국제 입양된 여성이었고 첫째 아이 역시 그가 입양된 기관을 거쳐 그의 딸이 됐다. 아기의 후견권을 놓고 다투는 주법원에서 그가 쏟아낸 항변을 대한민국이 변명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은 SK와 같이 소중한 아기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꼭 지켜야만 합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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