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과 하청 업체의 의무 따로 규정해야”
전문가들은 경영자의 의무와 처벌에만 중점을 둔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산재를 예방할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돕는 내용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주로 대기업인 원청과 영세한 하청 업체가 지켜야 할 안전 관리 내용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수영 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기업 규모와 현장에서의 역할에 따라 지켜야 할 안전 의무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도 작업자의 사고 발생 위험과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현행 중처법은 현장에서 원청과 하청의 안전 관리 의무를 불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일감을 주는 대기업에선 하청 업체의 과실까지 모두 책임을 떠안는 것에 불만이고, 일감을 받는 영세 기업은 “대기업 수준으로 안전 관리 의무를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이다. 국내 중처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에는 원·하청 업체가 져야 하는 의무를 따로 규정하고, 처벌(벌금) 기준도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 이와 관련해 대한건설협회는 작년 말 기업별로 의무를 차등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기업마다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무는 방대하고, 처벌은 과도하다”며 “국회가 시행령을 통해 구체화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중처법 시행 후 인력 확보와 비용 증가로 허덕이는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사고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소규모 기업이 안전 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중처법 적용 재유예 등 법률 개정에 나서거나, 재정·세제 등 지원 확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행 중처법은 각 기업이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서류 작업에 치중하는 등 형식적 면죄부 만들기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이는 장기적으로 실효성에 대한 냉소를 불러 사업 현장을 더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며 “의무 주체와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실효적인 지원을 통해 법의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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