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광장에 나오셨나요 [권김현영의 사건 이후]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왜 광장에 나오셨나요?”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윤퇴청)이 2025년 1월1일부터 13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10~30대 청년들에게 물었다. 총 954명이 주관식을 채워야 하는 까다로운 설문조사에 성실하게 응답했다. 지난 1월23일 조사 결과의 발표 당일 온라인 접속자는 1700명이 넘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개별 인터뷰 기사들은 많이 실렸지만 청년층에 특정해서 광장 경험의 의미를 청년들이 직접 묻는 설문조사는 이 조사가 최초다. 응답자 중 여성이 76.7%, 남성이 11.8%였고, 기타와 무응답이 11.5%였다. 광장의 다수가 젊은 여성이었다는 기존 보도와도 일치하는 결과다. 다만 이 조사에서는 왜 광장에 나갔는지, 무슨 변화를 원하는지, 그리고 이들에게 광장은 어디였는지에 대한 ‘다음 질문’이 있었다.
12월3일부터 지난 2개월여 동안 언론, 학계, 소셜미디어 등에서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은 앞다투어 광장을 가득 채운 젊은 여성들에 대해 놀라워하거나 고마워하거나 기특해했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중요 장면에 젊은 여성들은 항상 있었음에도 여성은 언제나 새롭게 발견된 것처럼 취급된다. 그 결과 광장의 여성들은 재발견되었고, 다시 잊혔으며, 이 일은 반복되었다. 왜일까. 젊은 여성들이 광장에 나온 것은 그 자체로 의미부여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왜 젊은 남성들은 극우화되었는가는 주요 분석 대상이 되지만, 왜 젊은 여성들이 광장에 그렇게나 많이 나갔는지는 현상만이 묘사될 뿐 질문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성별 간의 차이만 부감 숏으로 떠오르고 갈등만이 악순환된다. 두개의 성별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이 더욱더 비가시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참여자들이 누구인지를 계속 물으면서 이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와 배경, 그리고 이들이 광장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질문하고 이에 대한 기록이 이어져야 그것은 비로소 잊히지 않는 역사가 될 수 있다. 다행히 남태령 아카이브를 비롯해 다양한 기록연구자들이 이 작업을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참여자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은 광장은 ‘남태령’이었다. 남태령은 양곡법 개정을 외치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찰에 의해서 멈추었던 장소다. 2024년 12월21일, 가장 밤이 긴 동짓날 밤 ‘전농 티브이(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들이라면 응원봉을 든 젊은 여성들이 남태령에 모여들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를 지켜주러 왔다고 엉엉 울던 농민활동가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농민과 함께한 남태령은 민주노총과 함께한 한강진 시위로 이어졌고 혜화역의 전장연 지하철 시위로 이어졌다.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며 지하철 탑승 시도를 하는 장애인 활동가를 번번이 끌어내던 경찰은 스스로를 꿀벌을 지키는 ‘말벌 아저씨’로 부르는 젊은 여성들이 달려오자 더 이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못했다.
2016년의 탄핵 시위는 박근혜를 탄핵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울 중심, 남성 중심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2024년의 퇴진 광장의 구심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남태령의 자유발언대처럼 매일 다른 구심이 만들어지고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중이다. 2008년 촛불광장에서 광장에 나온 여성들을 지키겠다고 설치던 예비군복을 입는 남성들은 2024년 윤석열 퇴진 광장에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여자 아니고 논바이너리”라고 정정하자, “알아두겠다”고 했다는 농민의 이야기가 들려온다.물론 그동안 문제제기를 해도 바뀌지 않았던 조직 내의 가부장성과 위계 폭력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 없고, 농민과 노동자가 중년의 남성으로만 상상되고 대표되는 것 자체가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를 반영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사람은 여전히 광장을 조직하는 주요 역할을 하고 있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진다며 극우화된 남성 피해자 정체성 정치가 파놓은 프레임에 빠진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수많은 불화들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이 민주주의의 희망이라는 점만은 이 광장을 경험하고 지켜보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감각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여성현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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