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적 판결, 그러나 추악했던 국가 [세상읽기]

한겨레 2025. 2.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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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2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 1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원고인 응우옌티탄이 승소 소식을 들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재성 | 변호사·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대리인

2000년 초, 한겨레 기자는 진해의 한 커피숍에서 참전군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다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베트남전 당시 주월한국군 헌병대 수사계장으로 복무했던 이는 답했다. “아들이 지금 많이 아픈데, 그게 베트남에서 제가 잘못한 일 때문인 거 같아서요.” 수사계장의 증언은 2000년 6월 ‘한겨레21’에 “청룡여단서 양민학살 조작은폐, 전 해병 헌병대 수사계장 증언 … 퐁니촌 사건 베트콩 소행으로 조서 받아라 지침 내려와”로 보도되었다.

1999년부터 한겨레21의 보도를 중심으로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피해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참전 군인들의 용기 있는 고백도 이어졌다. 위 보도는 그런 맥락 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자도, 수사계장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들이 고백하고, 보도했던 그 ‘퐁니 사건’이 20년 뒤 법정에서 다뤄지고, 여기에서 이 기사가 핵심증거로 사용되리라는 것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월17일 퐁니 사건(1968년 2월12일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 70여명이 살해된 사건)의 생존피해자 응우옌티탄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2023년 2월7일 1심에 이어,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한 2심에서도 다시 한번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념비적 판결이다. 베트남전과 관련해 참전국의 민간인 학살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민주화 이후 채 40년도 지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게다가 행정부가 학살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양심에 따라 진실을 판결했다. 누군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수준’을 물어본다면, 이 판결을 보이고 싶다. 판결문 중 일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 이 사건 공격과 같이 다수의 비무장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의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피고석에 앉은 대한민국의 모습은 추악했다. 국가배상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주장은 이 사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신중하고 절제되어야 마땅했지만, 대한민국은 법 기술자들이 부릴 수 있는 기술을 다 부렸다. 8살 소녀가 복부에 총상을 입고, 가족이 몰살당했다. 그 고통을 입은 피해자에게 ‘베트남인이 돈도 없을 텐데 한국 변호사를 어떻게 구했냐’, ‘경위와 의도가 불온하다’며 비아냥거렸다. 객관적 증거 앞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했고, 터무니없는 법리들을 들고 나왔다. 재판부마저 ‘주장을 뒷받침할 논문이나 판례가 있느냐’며 수차례 호통을 쳤을 정도다. 죽음 앞에서 해서는 안 되는 주장도 했다. “만약 베트남 피해자 9천여명이 모두 소송을 제기하면 3600억원 정도의 재정 부담이 생기는데, 이 부담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귀속됩니다.”

참전 군인들을 이용한 주장은 추악함의 정점이었다. 대한민국이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수사계장의 증언이 담긴 기사를 어떻게든 흔들어야 했다. 이에 수사계장의 진술서가 새로운 증거로 제출된다. “은폐 또는 덮으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본인과 관계없는 기자의 추리”라는 진술서.

수사계장은 2000년 인터뷰에서 “진상을 밝히겠다고 용기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죄책감이 든다” 말했다. “내 가족이 그렇게 죽었다고 한번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봐야 하는데”라고 한스러워도 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1968년 수사계장에게 퐁니 사건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조작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내렸다. 그 부당한 명령을 따른 수사계장은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자신과 같이 해병대 장교의 길을 걸었던 아들이 젊은 나이에 큰 병에 걸리자, 본인의 과오 때문인가 절규하며 진실을 고백했다. 안타깝게도 해병대 소령이었던 수사계장의 아들은 20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순직했다. 그런데 국가는 그 군인에게 사과하긴커녕 2024년 다시 한번 ‘국가에 유리한 문서’를 작성하라 요구했다. 전쟁과 학살은 끝났는가. 부당한 명령과 고통스러운 복종은 끝났는가.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피고 대한민국의 행태를 작정하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2000년 기사가 수사계장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작성되었고, 이후 아무런 반론·정정요구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2024년 진술서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이 2024년 진술서가 허위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고의로 허위 진술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또다시 “진상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 평가했다. 1968년의 베트남에서의 은폐가 2024년 한국 법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죽비 같은 지적이었다.

폭력이 언제든 사회를 뒤덮을 수 있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이 판결이 모든 공무원, 특히 군인들의 교육자료로 활용되길 희망한다.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는 지역과 시간을 넘어 결국 책임지게 된다는 것,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 따위는 결국 벗겨진다는 것을 끊임없이 새겨야만 폭력을 막을 수 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국방부의 책임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수사계장을 찾아뵙고 사과한 뒤 2000년의 용기를 공식적으로 평가하길 바란다. 기념비적인 판결뿐만 아니라, 그 판결을 막기 위해 추악한 변론을 한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까지 교육자료에 들어가야 한다. 그 추악함을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 공동체의 또 다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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