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몰상식이라 더 두려운 트럼프노믹스
200년 검증된 자유무역 흔들어
경제적으로 MAGA는 모순이지만
美 우선주의와 결합해 큰 위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19세기부터 인류 번영을 이끈 자유무역을 위협하는 경제적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무관세일 때 1만원 하던 수입품이 하루아침에 관세가 붙어 1만2500원이 되면 그만큼 안 팔릴 수밖에 없다.
관세 전쟁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이 거론하는 대표적 사례가 200여 년 전 영국의 곡물법(Corn Law)이다.
프랑스 절대 왕정이 붕괴한 후 유럽 대륙 전역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1797~1815년)은 영국 농업계엔 최고 호기였다. 전쟁터로 변해버린 유럽 본토의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전쟁 전 1쿼터(약 12.7㎏)당 46실링이던 밀 가격은 전쟁 중 177실링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곡물 생산이 정상화되면서 밀 가격이 급락하자 영국 의회는 곡물법을 강화해 외국산 밀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수입을 금지했다.
곡물법은 귀족과 지주에게는 도움이 됐지만,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에 맞춰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과 신흥 산업자본가들의 반발을 샀다. 밀로 만든 빵값이 고공 행진하면서 1830~1840년대 영국인의 소득 약 절반이 식량 구입에 쓰였다. 영국이 저렴한 프랑스 곡물을 수입하지 못하자 프랑스도 영국에서 대량 생산되는 모직물을 살 돈이 없었다. 양국 간 교역은 크게 축소됐다. 특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결과적으로 사회 분열을 일으키고 경제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크고 작은 폭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곡물법은 1846년까지 32년간 지속됐다. 그나마 1845년 감자 역병 때문에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아일랜드 대기근이 없었다면 더 늦게 폐지됐을지도 모른다.
곡물법 폐지를 신호탄으로 영국은 농업뿐 아니라 모든 부문의 무역을 자유화했다. 경제사학자들이 곡물법이 폐지된 1846년을 자유무역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다. 곡물법 폐지 이후 식량 가격이 안정됐고, 면직물 수출이 크게 늘면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도약하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관세를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르는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이 경제학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관세 인상은 수입품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 둔화라는 공약 실현에 방해가 된다. 설령 관세 압박이 효과를 발휘해도 문제가 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경우 달러 수요가 늘어나 달러 가치가 오르게 된다. “미국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는 트럼프 공약과 반대 결과를 낳는다.
관세 카드가 모순투성이인데도 캐나다·멕시코가 펜타닐(마약)이나 불법 이민자 단속에 협조하겠다며 백기 투항한 것은 역설적으로 트럼프 정책이 비상식적인 데다 예측 불가하기 때문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룰(규칙)이 아니라 파워(힘)를 앞세운 외교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저질러놓고 나중에 협상하는 스타일”이라며 “비합리적인 정책도 실제 집행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상대를 주눅 들게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이제 시작 단계다. 그는 중국 다음 상대로 EU(유럽연합)를 지목했고, 대상 품목도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를 비롯해 철강·알루미늄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미 무역 흑자국 8위인 우리나라에 청구서가 날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치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통상 문제만큼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국익(國益)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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