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임산부는 왜 초등학생 여야를 유괴해 살해했나

김세령 2025. 2. 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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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2월 5일 (수)

■ 진행 : 송영은 변호사

■ 대담 : 정승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송영은 변호사(이하 송영은) : A씨 부부에게 걸려온 그 날의 전화는 그 누구일지라도 살면서 절대는 받고 싶지 않을 그런 전화였을 겁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돈을 갖고 나오라는 유괴범의 협박 전화. 유괴범이 전화를 건 장소는 근처 다방이었죠. 경찰은 역량을 총동원해 해당 다방의 출입구를 봉쇄했고 범인이 빠져나갈 공간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 다방에 있던 사람들은 총 13명. 경찰은 범인이 이 13명 중에 있다 확신했죠.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수사를 해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경찰은 지문만 채취한 채 힘들어하는 한 임산부를 서둘러 돌려보냈는데요. 아마 당시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경찰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건 X파일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 X파일 송영은입니다. 로엘 법무법인 정승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정승은 변호사(이하 정승은) :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 정승은 변호사입니다.

◆ 송영은 : 제가 어릴 적에 발생했던 그런 사건입니다. 워낙 유명했던 사건이라 저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초등학생이라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국민학생이라고 불렀었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실종되는 그런 사건이 있었죠.

◇ 정승은 : 네. 실종 당일인 1997년 8월 30일 평소라면 영어 학원을 다녀온 박 양이 귀가할 시간이 이미 넘었는데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박 양의 부모는 영어 학원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나갔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젊은 아줌마랑 같이 갔어요라고 대답했고, 박 양의 부모는 유괴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 송영은 :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어린 딸이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덜컹 하고요. 심지어 학원에 전화해 봤더니 어떤 사람이 데려갔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 거릴 것 같거든요.

◇ 정승은 : 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박 양의 부모는 곧바로 실종 신고를 하고 이후 경찰과 함께 협박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박 양의 집 전화기에는 녹음기와 발신지 추적 장치를 달아둔 상태였습니다.

◆ 송영은 : 만약에 돈을 노리고 아이를 납치한 거라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취해 올 테니까요. 전화는 바로 왔나요?

◇ 정승은 : 실종 당일 오후 6시경 1차 협박 전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발신자는 잘 있어요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다음 날인 오후 3시 52분경에 2차 협박 전화가 왔습니다. 2천만 원을 준비해서 명동역 출구 인근 건물 앞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추적은 하지 못했습니다.

◆ 송영은 : 네 이게 영화에서도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마는 발신 전화를 통해 추적을 하려면 일정 정도의 시간을 끌어줘야 추적이 가능한 모양이더라고요. 범인도 당시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을 것 같긴 하네요.

◇ 정승은 : 네 그렇게 같은 날 밤 9시 3분경 세 번째 협박 전화가 오게 됩니다. 이번에는 결국 발신지를 추적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신지는 명동의 한 커피숍이었습니다.

◆ 송영은 : 아 결국 범인 위치를 찾아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 정승은 : 경찰은 박 양의 부모에게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고 당부하고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우선 커피숍 주변을 경찰력을 동원해서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그리고 출근은 한 곳이었기 때문에 용의자가 이곳에 있다면 빠져나갈 수 없을 걸로 보였습니다. 경찰은 손님과 종업원들에게 잠시 검문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신분증 확인과 검문을 실시했습니다.

◆ 송영은 : 그럼 그때 경찰관은 왜 검문을 진행하는 건지 그 상황에 대해서는 경찰이 다 설명을 하지는 않았나 보네요.

◇ 정승은 : 네 맞습니다. 당시 아직 공개수사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은 긴급한 유괴 사건 수사 중인 걸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이렇게 한 명 한 명 검문을 하던 중에 혼자 앉아 있던 만삭의 임산부가 항의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임산부는 만삭의 임산부한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기가 놀라서 배를 차는 바람에 너무 아프다. 병원에 가봐야 하니까 빨리 보내달라라고 하면서 큰 소리로 항의했고, 인근에 있던 후배들까지 불러서는 애가 잘못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면서 자기편을 들게 했습니다. 경찰이 지문만 채취한 후 이 임산부를 커피숍 밖으로 내보냈는데 그것이 경찰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 송영은 : 직감적으로 상당히 의심이 되는데, 설마 임산부가 범인이었나요?

◇ 정승은 : 네 바로 그녀가 범인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설마 임산부가 범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 송영은 : 참 선입견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 다방에서 당연히 용의자를 특정하진 못했을 거고 그러면 이후 수사는 어떻게 됐죠?

◇ 정승은 : 이후 뚜렷한 범죄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경찰은 실종 5일째에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습니다.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박 양 유괴 사건을 보도했고요. 경찰은 3차 협박 전화 당시에 다방에 있던 손님들의 주변 탐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후 한 남성이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 송영은 : 그 남성이란 사람이 누구고 어떤 이유로 전화를 했던 거죠?

◇ 정승은 : 전화를 건 남성은 바로 임산부 전 씨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남성은 수사본부에 전화해서 왜 경찰이 우리 집 주변을 서성이냐고 물으면서 내 딸이 9월 1일 가출에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전 씨의 아버지는 공개수사 이후 배포된 몽타주를 보게 됐고, 비슷한 시기부터 연락이 닿지 않던 딸이 의심스럽다면서 경찰에 먼저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 송영은 : 참 경찰서로 직접 전화를 걸었던 그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했을까 여러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 정승은 : 네 전화를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후 경찰은 협박 전화 음성을 들려주고 자신의 딸의 목소리가 맞다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이때 과연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튼 이후 경찰은 이 아버지의 전화에 발신지 추적기를 달아 범인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추적에 성공했습니다.

◆ 송영은 : 바로 출동했겠죠?

◇ 정승은 : 네. 발신지는 불광동의 한 여관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전 씨가 여관을 전전하면서 은신 중이라고 보고 서울 시내 전 여관에 대한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관악구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전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건 발생 13일 만이었습니다.

◆ 송영은 : 가장 중요한 게 남았잖아요. 이 여성이 유괴한 어린 여자아이 안전하게 데리고 있었습니까?

◇ 정승은 : 모두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박 양은 동작구의 한 지하 창고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박 양은 실종 당일 이미 살해되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송영은 : 네 결국 절대 벌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 건데, 이해가 안 가는 게 돈을 노리고 아이를 납치했으면서 도대체 왜 아이를 죽인 걸까요?

◇ 정승은 : 전 씨는 1차 협박 전화를 건 후 박 양에게 사탕이라고 속여서 수면제를 먹였습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깬 박 양이 배고픔과 불안해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재촉했는데, 이에 화가 난 전 씨가 박 양의 목을 졸라 살해했던 겁니다. 전 씨는 내무부 고위 공직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4년제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에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미국 유학까지 떠났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전 씨는 1995년 한 서울의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던 중에 연극을 하던 최 씨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신 3개월인 상태로 1997년 2월 최 씨와 결혼합니다. 전 씨는 최 씨와 신길동 지하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는데, 최 씨의 인형극단이 실패하면서 수천만 원의 빚을 지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전 씨가 이 사치와 낭비벽이 심한 탓에 생활력도 없었다고 합니다. 전 씨는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리던 중에 결국 박 양을 납치하기에 이른 겁니다.

◆ 송영은 :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그릇된 욕망으로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게 아마 들으시는 분들도 저만큼이나 화가 나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저나 납치당했던 박 양과는 일면식이라도 있던 사이였나요? 왜 하필 박 양이었던 겁니까?

◇ 정승은 : 채무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전 씨는 친정집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우연히 영어 학원에 가는 길이었던 박 양을 만났습니다. 세련된 옷차림의 박 양이 부잣집 딸이라고 생각한 전 씨는 순간적으로 박 양을 유괴해서 부모에게 돈을 뜯어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 씨는 박 양에게 접근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박 양이 다니는 영어 학원까지 함께 간 후에 학원 수업이 끝난 박 양을 재미있는 곳에 가자면서 깨어내서 동작구 사당동의 한 지하 창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곳은 전 씨의 남편 최 씨가 인형극단을 운영하다가 소품 창고로 쓰는 곳이었습니다.

◆ 송영은 : 네. 아이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박 양의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싶습니다.

◇ 정승은 : 네 그런데 이 여성은 체포 이후 수사 과정에서 계속 본인 혼자 한 일이 아니고 공범이 있다, 본인도 피해자다, 본인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렇게 계속 주장했습니다.

◆ 송영은 : 그건 또 무슨 소리죠?

◇ 정승은 : 남편의 극단 사무실 임대 광고를 보고 찾아온 성명불상의 남자 2명에게 자기가 성폭행을 당했고, 이 폭행범들이 당시 장면을 담은 필름과 사진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박 양이 유괴 사건에 끌려갔다는 겁니다.

◆ 송영은 : 만약에 그게 진짜라면 공범들도 싹 잡아들여서 처벌을 해야 되지 않나 싶거든요.

◇ 정승은 :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경찰은 공범들의 인상 착의를 계속 집요하게 묻는 등으로 수사하면서 결국 전씨가 내가 꾸며낸 내용이고 남편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거짓 상황을 꾸몄다고 털어놓게 했습니다. 경찰은 전 씨가 검거에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만든 걸로 보았습니다. 또 재판 과정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전 씨가 연극성 인격 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송영은 : 네 어떻게든 자신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 발악을 한 게 아니었나 더 씁쓸해지는 것 같습니다.

◇ 정승은 : 네 검찰은 전 씨에 대해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약취, 유인, 매매, 이송 등 살인 치사 혐의로 사형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전 씨가 초범이라는 점, 그리고 우발적으로 살해에 이른 점 등을 참작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항소심과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여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습니다.

◆ 송영은 : 앞서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로 임신을 한 임산부였다 이런 얘기를 했었잖아요. 그러면 교도소 안에서 아이를 출산했나요?

◇ 정승은 : 네 수감된 이후 경찰 병원에서 딸을 출산한 전 씨는 교도소에서 살아보니 교도소도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이다라고 하면서 모든 죄수가 내 아이를 보고 싶어 한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아이를 출산할 경우에 18개월까지는 직접 키울 수 있고 이때 분유나 기저귀 같은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나라에서 지원합니다. 생후 18개월이 되면 아이는 보육원으로 보내집니다. 저희가 살펴본 박 양 유괴 납치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의 선입견이 때로는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 송영은 :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고요.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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