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나’에게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5. 2. 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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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2024년 1월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관저 인근 ‘노동자 시민 윤석열 체포대회’ 농성장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신속 체포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은박 담요를 둘러쓴 시위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내가 윤석열의 계엄을 ‘체험’한 날은 12월3일이 아니다. 1월의 어느 날,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강진역으로 향하던 열차 안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두툼한 옷차림과 장갑, 주머니 한쪽으로 삐져나온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유인물.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나와 함께 흔들렸던 사람들 대부분은 얼핏 봐도 ‘동지’들이었다. 반가웠다. 한강진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플랫폼을 빠져나와 자연스레 대오를 형성하며 출구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하철역 출구 앞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곳에서 진을 치고 집회를 하던 사람들은 윤석열 체포를 반대하는, 일명 ‘태극기부대’였다. 아차, 싶었다. 출구를 잘못 나왔다. 윤석열 체포 촉구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체포 반대 무리를 관통해야 했다.

“그쪽으로 계속 가면 죽을 수도 있어!” 지나가는 내게 딴죽 걸며 비웃던 윤석열 지지자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태극기부대는,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든 온갖 욕설을 해댔다. 그중에는 손팻말로 때릴 듯 위협하며 눈을 부라리는 이도 있었다. 말리는 시민이나 경찰이 없었다면 폭력도 불사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보수’라는 말도 아까웠다. 보수라고 하면 왠지 한 사회의 정치 스펙트럼 안에 있는 동료 시민 중 한명 같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윤석열이 그들을 이용했지만, 그들도 윤석열을 원했다. 윤석열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약된 차 시간에 쫓겨 집회 도중에 돌아오던 기차 안. 객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 중에도 태극기부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나는 세상으로부터 잘려나가 고립됐다. ‘윤석열이라는 빌런들’이 뉴스의 주인공이 된 사회에 느낀 참담함과 절망은 동료 시민을 그 고통의 잠재적 가해자로 상상하게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창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아뿔싸, 사회관계망서비스를 급히 열어보니 내가 집회장을 떠난 뒤로도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며 한남대로를 지킨 ‘인간 키세스’들의 모습이 있다. 아, 우리는 얼마나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과 살고 있는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보름이 지났고 결국 태극기부대의 법원 난입 사건이 발생했다. 한동안 외면했던 뉴스를 어쩔 수 없이 보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혹시 나의 침묵이 말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법원의 담장을 넘어가라는 지시가 된 것은 아닐까. 나의 방관이 망치가 된 것은 아닐까. 법원 유리창을 깨부수는 도구가 된 것은 아닐까.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폭력으로 진압하려 했던 윤석열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법원에 불을 지르고 판사를 잡으려 한 태극기부대는 같은 욕망을 가졌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것은, 당신의 얼굴이 그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하고 당신의 집이 그들의 집과 다르다고 유리창을 깨버릴 수 있는 사회다. 당신이 아직 장애인이 아니고 아직 노동자가 아니고 아직 거동 불편한 노인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호소하고 대안을 요구할 때,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이라고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폭행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저들이 옹호하는 계엄이란 ‘다르다’를 목 조르는 폭력 체제다.

‘윤석열들’을 배양하는 시스템이 있는 한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는 내가 그들을 말할 수 있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내가 그들을 행동하게 했다. 그래서 새해, 다만 한가지를 소망해본다. 나는 이 세상의 잔인함을 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잔인하게 되는 것에 합류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 키세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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