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옥죄는 현대제철 ‘안전수칙’…장비 부족해 못 써도 “위반”

김해정 기자 2025. 2. 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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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100㎏짜리 설비 부품을 옮기다 손가락이 골절됐다.

ㄱ씨는 "현장에선 크레인 한 대로 여러 작업을 하고 있다. 안전수칙을 지키려면 크레인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생산이 밀릴 수밖에 없는데 원청은 '왜 (생산량을) 못 맞추냐'고 압박한다"며 "이런 문제로 지난 2년간 크레인 추가 설치를 요구했는데도 현대제철은 묵살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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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현대제철 노동자 인권실태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현대제철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 제공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100㎏짜리 설비 부품을 옮기다 손가락이 골절됐다. 그는 4개월 치료 뒤 복귀하자 원청 현대제철로부터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안전수칙 위반 통보를 받았다. ㄱ씨는 “현장에선 크레인 한 대로 여러 작업을 하고 있다. 안전수칙을 지키려면 크레인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생산이 밀릴 수밖에 없는데 원청은 ‘왜 (생산량을) 못 맞추냐’고 압박한다”며 “이런 문제로 지난 2년간 크레인 추가 설치를 요구했는데도 현대제철은 묵살해왔다”고 했다.

5일 노동·인권·법률단체 활동가로 구성된 ‘현대제철 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조사단)은 현대제철 당진 공장 원·하청 노동자 24명을 인터뷰한 ‘인권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해 12월 같은 공장에서 혼자 작업하던 노동자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이뤄졌다. 2022년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 이후 현대제철(당진·인천·포항)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5건이다. 또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현대제철에서 2010∼2025년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52명에 달한다.

조사단은 현대제철의 ‘10대 핵심안전수칙’과 이에 따른 징벌적 제재를 문제 삼았다. ㄱ씨 사례처럼 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안전수칙을 강요하고, 산업재해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린다는 이유에서다. 안전보호구 착용, 작업절차 준수 등이 담긴 안전수칙을 위반하면, 회사는 ‘안전사랑카드’를 발부하고 카드 발부 건수에 따라 포상 제외, 작업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엔 ‘휴업’이 발생한 안전사고는 곧바로 징계 대상이 되고, 위반 정도에 따라 하청업체 입찰 제한 등 제재가 강화됐다.

그런데도 정규직과 달리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절차 마련에 의견을 제기할 창구조차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정규직 노동자 ㄴ씨는 “동료가 수칙 위반 때 제재받으니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고 조사단에 밝히는 등 정규직의 의견 개진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은 “징벌적 규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폐지하거나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안전수칙 마련에)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은 “(조사단이) 10대 핵심안전수칙 등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폐지를 주장하지만,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노사가 합의한 안전 규정”이라며 “모든 산재의 책임을 기업에만 돌리려는 왜곡된 주장은 유감스럽다”고 했다. 또 “매달 안전보건협의체 회의를 열어 협력사 대표들과 작업현장 애로사항에 대한 의견청취를 하고 있고, 협력업체도 안전제안을 할 수 있는 안전 신문고 제도도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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