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트럼프의 허황된 “가자지구 차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 등 이웃 나라로 “재배치”하고, 미국이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파괴된 잿더미”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TV쇼가 아니라 지난 4일 2기 행정부 첫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차지할 법적 권한은 없다. 무력으로 차지하겠다면 미군 주둔이 필요한데 중동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이웃국이 200만 팔레스타인인을 수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가 봐도 허황된 발언이 나오는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씩 웃으며 트럼프를 바라봤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싹 다 정리해버리겠다는 건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조차 차마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꿈이니까.
트럼프의 말 중에 유일한 진실은 가자지구가 사람 살기 어려운 “지옥”이 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2007년 이후 가자지구 불법 봉쇄, 그리고 2023년 10월7일 이후 자행된 학살 때문이지만, 그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 듯하다. 그 땅이 부동산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이 됐다는 의미다. 호화 휴양지의 대명사로 그의 별장이 있는 마러라고 대신 프랑스 리비에라를 쓴 것이 그나마 남은 양심이랄까. 또 하나 분명한 건 트럼프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제안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하는 ‘나크바(대재앙)’에 다름 아니다.
트럼프는 취임 후 2주간 많은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관세전쟁, 파나마운하 분쟁, 대외원조기관 해체 등 놀라운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그가 말한 대로 다 실현되진 않지만 그중에는 수용되는 게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시선이 거기 쏠린 사이 숨겨진 진짜 의도가 관철되기도 한다. 이번 일에서 그게 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전범’ 네타냐후에 대한 미국 지지로 하마스와의 2단계 휴전협상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충격도 반복되다 보면 역치를 넘고 더 이상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미국이 가진 카드가 무척 많고, 트럼프가 아직 임기 초라는 점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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