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심장병의 한계를 넘어…“아이들은 희망을 증명했다” [건강한겨레]
‘심장병 환자’라는 한계 벗어난 삶 위해
2016년 환우 아이들과 한라산 오른 뒤
지난해 안나푸르나 베이스 세계 첫 등정
“돌아보면 모든 걸음이 눈물과 감동이었습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이하 ‘환우회’)가 이끄는 등반 모임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선천성심장병 환우가 운동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 활동에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시작한 원정대는 2016년 한라산을 시작으로 국내외 다양한 산을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히말라야 원정대를 꾸려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도 다녀왔다. 선천성심장병 환우단체로서는 세계 최초로 이룬 성과다.
환우회는 연중에도 ‘달라요, 다르지 않아요!’라는 슬로건을 걸고 인식 개선 산행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1회 산행이 있었다. 올해 6월, 원정대는 지난 10년의 발걸음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라산에 오른다. 한겨레신문은 지난달 31일 서울시 정동의 한 카페에서 안상호 환우회 대표를 만났다.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는 어떻게 시작됐나?
“2015년 환우회 모임에서 일본의 선천성심장병 환아들이 후지산을 등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환우회는 선천성심장병 환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을 해오던 터였다. 우리도 도전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에는 많은 의료진이 반대했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는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원정대에 참여한 부모들은 두렵지만 도전에 나섰다. 우리 아이들이 ‘심장병 환자’라는 한계에 갇혀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마음 하나였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식 개선 산행을 추진한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과거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은 체육 활동은 물론이고 여러 모임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편견과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가능성을 제한당하며 살아왔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하지 마라’로 점철된 삶은 어떨 것 같은가?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선천성심장병 탓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는 정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보았다. 환우회 부모들은 아이들이 질환 안에 갇혀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관리를 잘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편견 때문에 아이들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걸 이겨내고 싶었다.”
-걸어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난관이 많았을 텐데.
“돌아보면 준비 과정이 전부 다 눈물이었다. 원정대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로의 병력을 잘 알고 있다. 언제 수술했는지, 몇 살에 판막을 갈았는지, 인공 혈관의 크기가 얼마인지 등 세세한 정보까지 공유한다. 등반 도중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의료진에게 하나하나 증상을 설명하며 위험성을 물어보면서 걸음을 내디뎠다. 다행히 초반에 함께해준 의료진이 몇 분 계셨다. 서울대병원·부천세종병원·전남대병원 등에서 4명의 의료진이 동참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정상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으면 중간에 하산하는 것도 염두에 뒀다. 병이 없는 일반인도 산행하다가 힘들면 내려오지 않는가? 앞서 말했듯 심장병이 있다고 해서 미리 한계를 짓는 삶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2016년 한라산 등반에는 13시간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랐는데, 이후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6월인데도 너무 추웠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등반을 마쳤다. 해냈다는 감격과 안도감이 뒤섞여 모두 함께 울었다. 그렇게 벌써 10년이 흘렀다. 경험과 데이터가 쌓였다. 지난 10년 동안 함께한 의료진도 ‘이렇게 아이들의 운동 능력이 향상될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신다. 등산을 반대하던 의료진도 지금은 환아 가족들에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선천성심장병은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질환이다.
“선천성심장병은 태아의 심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병명만 해도 30가지가 넘는다. 단순 심기형과 복잡 심기형으로 나뉘는데, 환우회에서 등산하는 아이들은 모두 복잡 심기형 아이들이다. 완치 판정을 받는 단순 심기형은 말할 것도 없고, 복잡 심기형을 가진 아이들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알려진 정보가 너무 많다. 이 때문에 환우회는 선천성심장병의 치료 현황과 예후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태아를 포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데도 소중한 생명이 낙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히말라야 등반 성공도 인상적이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가 많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4130m로 한라산의 두 배 높이다. 무엇보다 선천성심장병 아이들의 고산증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의 도전이었다. 국립산악박물관 고산체험실에 방문해 해발 5000m의 저산소 고산 환경을 미리 체험하며 아이들의 심박수와 산소포화도의 변화 및 증상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설악산에서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강도 높은 산악 훈련도 진행했다. 히말라야에서는 고산증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말도 아끼고, 식사량도 조절하고,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모두 오르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 나 하나가 잘못되면 우리의 도전 자체가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어린 친구들도 철저하게 규칙을 따랐다.”
-향후 목표는?
“오래전 우리 부모들이 모여 우리나라의 모든 심장병 아이를 위해 세상을 조금씩 바꾸겠노라 다짐했다. 20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부모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세상에 맞서 도전하고 노력하며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천성심장병 아이들과 성인 환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언제나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 목표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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