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과 폭식의 끝없는 소용돌이…“살을 빼다 삶을 잃다” [건강한겨레]

윤은숙 기자 2025. 2.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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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중 사망률 가장 높은 ‘섭식장애’ 대처법
정신적 문제로 음식 섭취에 장애 발생
거식증은 ‘살찌는 것에 공포’ 음식 거부
폭식증, 감당 못할 폭식 뒤 모두 토해내
거식증 환자 사망률, 일반인의 5~6배
초등 3년까지 발병 연령 점점 낮아져
아이가 ‘가족 식사’ 꺼리면 의심해봐야
‘정신적 문제로 음식 섭취에 장애가 생기는 병’인 섭식장애는 한번 걸려들면 너무 길고, 너무 괴로운 병이다. 거식증의 평균 사망률도 5~10%로 정신질환 중 가장 높다. 발병 나이가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치료 환경과 사회적 인식 개선은 정체돼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섭식장애는 한번 걸려들면 너무 길고, 너무 괴롭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괴로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병이다. 그런데 이 심각한 병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2022년 국내 교육인류학 연구 저널에 발표된 논문 ‘섭식장애 환자들의 삶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게워내고 토해내는 삶’에 실린 한 섭식장애 환자의 절규다. ‘유단비’라는 가명으로 등장한 환자는 20대 초반 병을 앓기 시작했지만, 34살이 돼서도 섭식장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적 문제로 음식 섭취에 장애가 생기는 병’인 섭식장애는 전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질병 중 하나다. 섭식장애(식이장애)는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신체 이미지 왜곡이 주요 특징이며, 크게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신경성 대식증(폭식증), 폭식장애 등의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에게 익숙한 거식증과 폭식증은 섭식장애의 대표적인 형태다. 거식증은 살찌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질환이다. 반면 폭식증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폭식을 한 뒤 음식을 모두 토해내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찌감치 섭식장애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던 서구의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섭식장애 중에서도 거식증의 평균 사망률은 5~10%로 정신질환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 원인에는 영양실조, 자살, 심혈관계 합병증 등이 포함된다. 특히 심장 부정맥과 전해질 불균형으로 인한 사망이 많았다. 또한 병의 유병 기간이 길수록 사망 위험이 높아졌으며, 입원 치료 거부, 치료 순응도 저하,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이차적 정신 질환이 동반될 경우 위험성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발표된 또 다른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거식증 환자의 사망률이 일반 인구보다 5~6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섭식장애 환자의 경우 거식과 폭식이 번갈아 나타나는 사례도 많다. 20년 이상 섭식장애를 치료해온 안주란 백상정신건강의학과 부설 백상식이장애센터 센터장은 “10대 초반에는 거식증 증상을 보이다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는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체중에 대한 강박 때문에 10대 초반 과도한 절식을 하던 아이들은 이후 폭식이라는 후폭풍을 맞는다. 이에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강제로 토한다. 이렇게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다보면, 삶 전체가 ‘먹고 토하는 것’에 지배당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연구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4명 중 1명은 사회적 기능과 경제적 자립에 장기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 섭식장애 환자의 삶의 질은 증상성 관상동맥질환이나 주요 우울증 환자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섭식장애는 일반적으로 10살에서 20살 사이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발병한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 발병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이 병은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고 평생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들은 신호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안 센터장은 “일단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발견이 늦을 수 있다. 일단 아이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집요하게 피하는 것이 첫 번째 신호다. ‘다른 곳에서 먹었다’는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 체중의 극적인 감소와 함께 새로운 옷에 집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지는 것도 대표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10대에 발병하는 섭식장애는 ‘병과 환자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사춘기 이전에 병에 걸리면 섭식장애가 아이의 인격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아이가 음식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자신의 원래 성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섭식장애는 빨리 발견해야 한다. 병과 아이가 지나치게 동화되면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발견 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섭식장애는 정신적·신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다양한 치료 접근법이 필요하다. 심리치료, 영양 치료, 약물치료, 입원 치료 등을 시도해볼 수 있으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개별적으로 조정된다. 심리치료의 경우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섭식장애 환자들의 부정적 사고방식이나 왜곡된 신체 이미지를 교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부모와 가족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해 환자의 건강한 식습관을 유도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변화가 중요하고 치료 기간도 비교적 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질병에 대한 가족 교육도 매우 절실하다. 이 밖에도 항우울제나 항정신병 약물 등을 통해 적절한 약물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2023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섭식장애 진료 인원은 2018년 8321명에서 2022년 1만2477명으로 49.9% 증가했다. 80% 이상이 여성 환자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숨은 환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섭식장애 투병 경험이 있으며, 유튜브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던 이진솔씨는 2022년 발표한 논문에서 “거식증 유병률이 전체 여성의 1%, 폭식증이 5%라는 점을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환자 수는 1만 명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며 “발병률이 증가하는데도 2019년 기준으로 섭식장애를 위한 공식적인 대책이 없었다. 2025년 현재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섭식장애 환자였으며, 섭식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인식주간을 운영해온 박지니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대표는 “환자는 증가하고 발병 연령은 낮아지고 있지만, 치료 환경과 사회적 인식의 개선 속도는 정체돼 있다”고 꼬집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 임의단체다. 박 대표는 “섭식장애는 복잡한 질환으로 전문성이 매우 요구되지만, 의료보험체계에서 매우 소외된 질병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수많은 환자가 지나치게 높은 비용 탓에 제대로 치료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보니 제대로 치료하는 의료기관도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국외에서도 식이장애의 증가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시간이 길고 소셜미디어 등을 더 많이 접한 아이들의 경우 섭식장애를 겪게 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의 공공보건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인 ‘국민건강서비스’(NHS)의 디지털 통계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 사이 섭식장애로 NHS에 입원한 환자 수는 처음으로 3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약 60% 증가한 수치다. 영국 섭식장애 전당의원그룹(APPG)은 보고서를 내어 국가 차원의 긴급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APPG는 특정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영국의 모든 정당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다. ‘섭식장애 APPG’ 의장이자 영국 하원인 서민원 의원인 웨라 홉하우스는 “섭식장애는 생명을 위협하는 정신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간과돼왔다. 의료 시스템 내 가장 큰 치료 격차 중 하나인데도 여전히 이 위기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픽뉴스-소아·청소년의 섭식장애 유병률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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