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체감온도 `영하 20도`…박스 한 장으로 버티는 노숙인들

정윤지 2025. 2. 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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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한 5일 오전 10시쯤 서울역 광장.

전국을 강타한 한파로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들이 생존 위기를 맞았다.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는 상자, 비닐, 천, 버려진 매트리스 속에서 한 50대 남성이 살고 있었다.

사흘째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노숙인의 안전에 대한 상담사들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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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발 한파 닥친 날, 노숙인 상담사 동행
핫팩·상자로 버텨도 칼바람엔 무용지물
‘사회 복귀’ 1순위지만 겨울철 0순위는 ‘생존’
주말까지 영하 10도 안팎 추위 지속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출근길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한 5일 오전 10시쯤 서울역 광장. 파출소 옆을 조금 지난 골목 한쪽에서 50대 주연석(가명)씨가 찬 바닥에 앉아 성치 않은 이로 계란 두 알을 먹고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이곳에 머문 주씨의 옆에는 불어오는 칼바람을 막기 위한 박스와 옷가지가 엉성하게 쌓여 있었다. 그를 찾은 사회복지사 오효진(37) 상담사는 “목 막히니까 같이 마셔요”라며 다정하게 우유를 건넸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다는 당부에 주씨는 주머니에 가득 넣은 핫팩을 주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5일 오전 10시쯤 서울역 광장 인근 골목에서 50대 노숙인 주연석(가명)씨가 오효진 사회복지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전국을 강타한 한파로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들이 생존 위기를 맞았다. 이날 이데일리는 서울시립 다시서기센터 상담사 2명과 서울역 노숙인의 안녕을 묻는 ‘아웃리치’에 동행해 노숙인들을 만났다. 센터는 110여명이 사는 서울역을 비롯해 용산역과 고속터미널역까지 총 250여 명의 노숙인을 살피고 있다. 1년 365일 24시간, 하루에 노숙인 한 명을 6~7회가량 만난다.

이날 만난 노숙인들은 핫팩과 상자, 신문 몇 장으로 추위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는 상자, 비닐, 천, 버려진 매트리스 속에서 한 50대 남성이 살고 있었다. 그가 몸을 숨긴 곳은 각종 물건으로 뒤덮여 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뻥 뚫린 천장으로 칼바람이 파고드는 구조였다. 오 상담사는 익숙한 듯 까치발을 들고 내부를 살폈다. “아픈 데 없어요?”라는 오 상담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살짝 들고 “예예”라고 답한 뒤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사흘째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노숙인의 안전에 대한 상담사들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이들은 평소 노숙인의 사회 복귀를 1순위에 두지만 요즘 같은 맹추위에는 ‘사망사고 방지’가 0순위 목표다. 사실상 노숙인들의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셈이다. 오래 일한 상담사들은 한 번 씩은 심폐소생술(CPR) 경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올 겨울 이 구역에서는 사망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우대경 사회복지사는 “사고가 나면 마음에 데미지가 있다”며 “인사 사고가 안 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역 11번출구 방면 지하보도에서 종이 상자로 만든 집에서 누워있는 노숙인에게 오효진 사회복지사가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이어서 찾은 서울역 6번 출구 방면 지하보도에도 불규칙한 간격으로 ‘상자 집’ 8개가 놓여 있었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햇볕은 물론 바람을 막아주는 차폐막이 거의 없어 온통 냉기가 가득했다. 노숙인들은 깔판 여러 개와 이불, 침낭, 비니, 장갑 등으로 무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담사들은 한 명 한 명 더 안부를 살피며 초코파이와 우유 등 간식거리를 나눠줬다.

노숙인들의 보온 용품은 침낭, 핫팩 정도가 전부다. 이 정도로는 혹한기를 날 수 없다. 센터는 그런 날씨에 대비해 사무실 옆에 마련한 8평짜리 방을 야간 시간대에 내어준다. 정원은 15명이지만 한 겨울에는 50명 넘는 인원이 이곳에서 잠을 청한다.

센터는 또 올겨울 자체적으로 ‘건강 고위험 노숙인’ 20명을 정해 그 중 16명을 시설이나 병원으로 안내했다. 나머지 4명은 시설 입소 등을 거절해 여전히 거리에 남아 있다. 우 상담사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주무시면 괜찮은데 싫다는 분을 억지로 데리고 올 수는 없다”며 “도움이 필요한 분이 도움을 거절할 때가 가장 걱정이고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한파는 주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의 경우 오는 9일까지 영하 10도 안팎을 오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고기온도 영상권을 회복하지 못할 전망이다. 더욱이 오는 6일 오후엔 눈발이 날릴 것으로 예보돼 있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을 전망이다. 현재 중부 지역과 전북, 경북 등지에 한파 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강원과 경기 동부를 중심으론 한파 경보가 발효 중이다.

정윤지 (yun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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