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의 깊은 역사, 몰라도 돼요”… 박물관에 뜬 ‘멍 때리기’ 관람

장상민 기자 2025. 2.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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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넓은 전시실을 빼곡히 채운 유물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런데 요즘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단 하나의 유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유물 멍'이 새로운 관람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도 박물관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재작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난 5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뜨겁게 사랑받은 국립춘천박물관도 '유물 멍'의 성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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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서 ‘톺아보기’ 프로그램
중앙박물관선 관련 책도 출간
(왼쪽부터)‘백자 투각 파초무늬 필통’ ‘창령사 터 오백나한’ ‘청자 원앙모양 향로 뚜껑’. 국가유산포털·국립춘천박물관 제공

박물관은 넓은 전시실을 빼곡히 채운 유물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1만 보는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공간에서 부지런히 ‘학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덤이다. 그런데 요즘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단 하나의 유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유물 멍’이 새로운 관람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예연구사 등 박물관 구성원들이 유물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담아 보내던 뉴스레터 ‘아침 행복이 똑똑’을 책으로 묶어낸 ‘유물 멍’(세종)은 본격적으로 하나의 유물을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책은 사람들의 100가지 ‘최애유물’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처음에는 박물관 구성원들의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공모를 통해 수집된 박물관을 사랑하는 관람객의 감상평까지 고루 담겼다. 깊은 고고학 지식이 없다 해도 나만의 시선을 긍정하고 응원하는 그들의 진심에 1만 명에서 시작한 뉴스레터의 구독자가 10만 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책의 머리말을 쓴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필자로 나서 ‘청양 장곡사 괘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줬다. 거대한 괘불을 그린 다섯 화승의 이름이 그림에 새겨져 있다는 것. 힘든 오르막을 올라야만 닿을 수 있는 장곡사와 그렇게 사찰에 오른 이들을 맞이하는 괘불의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평안을 선물해준 화승들의 이름을 불러주자고 제안했다.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람객들도 따스한 추억으로 응답했다. 19세기 만들어진 백자 투각 파초무늬 필통을 멍하니 바라보던 경남 창원에 사는 정정아 씨. 그는 ‘나이 오십 넘도록 한 번도 내 책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며 자녀들을 대학에 보낸 후 늦깎이 대학생이 되자 남편이 응원 선물로 건넸던 도자기 필통이 떠오른다는 뭉클한 사연을 전했다. 귀인초에 다니던 오제인 학생은 ‘청자 원앙모양 향로뚜껑’을 보며 반려 앵무새 ‘첫눈이’를 추억했다. 지금도 박물관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정 과장은 “박물관의 모든 유물은 한때 누군가의 애장품이었다”며 역사를 견뎌 오늘날 또다시 사람들과 만나길 기다리고 있는 유물의 의미를 강조했다.

재작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난 5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뜨겁게 사랑받은 국립춘천박물관도 ‘유물 멍’의 성지로 통한다. 옛사람들의 ‘이상향’이라는 박물관 콘셉트에 맞게 관동의 절경을 실감 영상으로 되살린 박물관 중앙 공간, 거대한 고인돌을 그대로 보존한 외부 정원 등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하염없이 멈춰 세우기 때문. 이런 인기 비결을 살려 박물관은 ‘춘박 명품 톺아보기’ 프로그램으로 유물과의 인연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 전반까지,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수요일에 강원의 명품 문화유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학예연구사 등이 직접 설명해주는 자리로 꾸려졌다. 지난 1월 시작된 프로그램은 ‘이상(理想)’을 강조하며 관동팔경을 그린 그림들을 소개했다. 오는 26일에는 이수경 국립춘천박물관장이 직접 나서 보물 ‘단종 어보’와 관련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특히 기쁨과 슬픔, 번뇌와 평안 사이 오묘함의 극치를 보이는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을 주제로 5월 진행될 ‘강원도에서 나한처럼 살기’와 8월 진행될 고인돌 주제 프로그램이 이목을 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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